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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깃집 계속 문 닫는데, 불법 포획은 '여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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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깃집 계속 문 닫는데, 불법 포획은 '여전', 왜?

입력
2023.06.28 04:30
수정
2023.06.28 10:4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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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1번지 울산 장생포, 줄줄이 폐업
인식 바뀌고 처벌 강화로 수요 감소해
가격 치솟은 탓 한탕 노린 포경은 여전
해경 "시간 걸릴 뿐 단속 절대 못 피해"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이 이달 2일 밤 포항 양포항 내 한 어선에서 찾아낸 불법 포획 고래고기.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이 이달 2일 밤 포항 양포항 내 한 어선에서 찾아낸 불법 포획 고래고기.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이달 2일 오후 10시 경북 포항시 장기면 양포항. 트럭 한 대가 컴컴한 부두로 들어서자 어선 한 척에 불이 들어왔다. 배 위에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도 포착됐다. 종일 잠복한 포항해양경찰서 형사계 경찰관들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지체 없이 선박으로 들이닥치자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잡어를 잡는 4.95톤짜리 소형 어선 창고는 검은색 망에 담긴 고래고기들로 가득했다. 정체는 밍크고래. 불법 포획을 숨기려 바다에서 덩어리째로 해체했는데, 분량이 무려 94자루나 됐다.

해경은 선장과 선원, 차량 운전자 등 포경 일당 3명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김건남 포항해경서 형사계장은 27일 “운반 사범들은 여전히 고래를 잡아 넘긴 포획선에 대해 모른다고 잡아떼고 있다”며 “유통 조직망까지 최선을 다해 검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래는 보호 동물"... 수요는 줄었지만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이 이달 2일 포항 양포항 내 한 어선에서 찾아낸 불법 포획 고래고기.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이 이달 2일 포항 양포항 내 한 어선에서 찾아낸 불법 포획 고래고기.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울산, 포항 등 과거 고래잡이로 명성을 누린 지역에서 불법 포획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룬 고래고깃집이 계속 문을 닫고 있는데도 그렇다. 환경단체 등의 꾸준한 고래 보호 운동과 강화된 단속 덕에 공급량이 크게 줄었고, 자연스레 가격은 치솟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귀해진 고래고기의 높은 몸값이 불법 업자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울산 장생포는 대대로 ‘고래고기 1번지’로 불렸다. 고래음식점 거리가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된 2008년엔 점포 면적 3.3㎡당 1,800만 원에 거래될 만큼 장사가 잘됐다. 불과 5년 전에도 50곳이 넘는 고래고기 식당과 유통업체를 합쳐 80곳 이상 성업했다. 그러나 지금 살아남은 가게는 20곳이 채 안된다. 대부분 횟집이나 중화요리점, 카페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경찰관들이 지난 2월 24일 경북 포항 호미곶항 부두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밍크고래를 살펴보고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경북 포항해양경찰서 경찰관들이 지난 2월 24일 경북 포항 호미곶항 부두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밍크고래를 살펴보고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인기가 시들해진 건 고래를 음식이 아닌 보호해야 할 멸종위기 동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이 크다. 장생포 고래박물관에서 만난 40대 관람객은 “초등학생 자녀가 건너편 식당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고래를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더라”면서 “고래고기를 맛본 적 없지만 (맛이) 궁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포경 단속 강화로 공급이 감소해 가격이 급등하자, 식당들은 내다 팔 고래고기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올 2월 경남 통영 욕지도 인근 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1톤짜리 밍크고래 한 마리는 삼천포수협 위판장에서 6,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한 식당 주인은 “2년 전 한 마리에 5,000만 원이던 밍크고래가 요즘엔 1억8,000만 원에 거래된다”며 “단가가 너무 뛰어 수지를 맞출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한몫 챙겨라"... 교묘해진 포획 수법

포경 조직이 바다에서 덩어리로 해체한 뒤 이달 2일 경북 포항 양포항으로 몰래 들여 오려다 해경에 적발된 고래. 작살이 꽂힌 흔적이 남아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포경 조직이 바다에서 덩어리로 해체한 뒤 이달 2일 경북 포항 양포항으로 몰래 들여 오려다 해경에 적발된 고래. 작살이 꽂힌 흔적이 남아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일부 업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노렸다. 고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한 마리만 잡아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불법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동해해양경찰청과 울산해양경찰서에 따르면, 2018년 1건에 불과했던 동해안 고래 포획 적발 건수는 2019년 2건, 2020년 3건, 2021년 6건으로 증가 추세다. 지난해에는 14건에, 적발 인원도 55명이나 됐다. 올해 3월 고래 포획으로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 재판을 받은 일당 5명 가운데 3명은 과거 같은 범죄로 처벌받은 전과자였다.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당국의 감시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포획과 운반, 유통 등 철저히 역할을 나눠 시간 간격을 두고 따로 움직인다. 잡은 고래도 선상에서 바로 해체한 뒤 다른 물고기와 섞어 육지로 몰래 들여오는 방식을 쓴다.

고래를 잡기 위해 불법 개조한 포획선. 고래를 쉽게 찾기 위해 다른 어선들보다 관제실(노란색 원) 위치가 높고, 고래를 작살로 찌른 뒤 배 위로 올려야 해 쪽문(붉은색 원)이 달려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고래를 잡기 위해 불법 개조한 포획선. 고래를 쉽게 찾기 위해 다른 어선들보다 관제실(노란색 원) 위치가 높고, 고래를 작살로 찌른 뒤 배 위로 올려야 해 쪽문(붉은색 원)이 달려 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해경은 업자들의 오판을 경고한다. “검거에 시간이 걸릴 뿐 포획 사범은 언젠가 반드시 감시망에 걸려들게 된다”는 것이다. 근거도 있다. 대개 고래잡이 배는 다른 어선과 육안으로 쉽게 구분된다. 포획한 고래를 좀 더 편하게 인양하려면 관제실 위치를 높게 하고 쪽문을 다는 등 불법 개조를 할 수밖에 없다.

성대훈 포항해경서장은 “양포항에서 잡힌 운반책들도 ‘수상한 배가 보인다’는 첩보가 기반이 됐다”며 “작살 등 불법 도구는 물론 선박도 몰수해 폐기 처분하는 등 포획 근절에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 김정혜 기자
울산= 박은경 기자
동해=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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