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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테크의 딜레마

입력
2023.06.23 11:56
수정
2023.06.23 14: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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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을 취재하면서 여성 대표들을 종종 만난다. 그만큼 여성이 창업하는 스타트업이 많이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여성 창업은 2021년 기준 66만 개로 2017년부터 연평균 3.1%씩 증가했다.

여성들의 스타트업 창업은 여러 면에서 반갑고 고무적이다. 우선 여성 창업가들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임신, 출산, 육아, 여성 건강 등의 문제들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해가 깊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도 현실적이고 적극적이다. 남성들은 알 수 없거나 생각해 보지 못한 여성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혁신적인 해결 방법도 여성 창업가들 사이에 많이 나온다.

또 여성 스타트업들은 가사 노동, 경력 개발, 교육, 건강 등 여성이 처한 현실과 각종 문제를 부각시켜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환기하는 역할도 한다. 인류 절반이 겪는 문제라면 사실상 인류 전체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여성 스타트업의 출현은 반길 만하다.

여성 스타트업들이 관심 갖는 펨테크(femtech) 시장 역시 날로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꼭 여성 창업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여성 문제에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들을 펨테크라고 부른다. 영어로 여성(female)과 기술(technology)을 합친 말이다. 세계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펨테크 시장 규모는 2020년 225억 달러(약 29조 원)에서 2027년 650억 달러(약 85조 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만큼 펨테크는 경제적으로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성 스타트업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다. 최근 만난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에 따르면 많은 펨테크들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벤처투자업체에 찾아가면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 심사역이 대부분 남성이어서 펨테크들이 제시하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거나 불투명하게 볼 수밖에 없어 투자를 꺼리게 된다.

여성 대표를 못 미더워하는 사회적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겠냐는 시선과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그렇다 보니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은 투자 유치부터 인적 관계, 각종 지원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은 여성 기업을 돕기 위한 모 기구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이야기한다. 정작 여성 스타트업 지원에 필요한 정보는 모르면서 생색내기용 행사 위주로만 흐른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이 기구가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은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방법을 물었으나, 우리 일이 아니어서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고 황당해했다. 모 대표는 여성을 돕겠다는 곳이 내용은 없고 너무 구태의연해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일부 기구의 일이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 여성 스타트업 대표는 해당 기구에서 보내는 이메일은 열어볼 가치가 없어 아예 광고(스팸)로 치부해 지워 버린다고 했다.

날로 커지는 세계 시장 규모에서 알 수 있듯 펨테크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야다. 한국에서도 경쟁력 있는 펨테크 스타트업이 나오려면 여성 창업가들에 대한 관심과 현실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필요한 교육과 제도적 지원,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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