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수사 강조 이후 일선 경찰서까지 전담팀
윤희근 경찰청장 "승진 6배 늘릴 것" 발언도
실종자 수사 등 소외 영역에선 인력부족 현상
최근 경찰이 특별승진(특진)이 걸린 '기획수사'에만 경찰력을 집중하는 바람에 다른 민생치안 업무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과 경찰 수뇌부가 관심을 가지는 실적을 쌓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일상 업무에 사람이 모자란다는 내부 불만도 조금씩 커지는 중이다.
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은 4월 초 발생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시음’ 사건 이후 △담당부서인 강력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와 △관할 31개 경찰서 전체에 마약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요즘 경찰의 관심 1순위는 '마약사범'
마약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히 강력 대응 지시를 내린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강남 마약음료 시음 사건이 발생하자 검·경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라고 지침을 내렸고, 윤희근 경찰청장도 4월 13일 전국 시·도경찰청장 화상 회의에서 마약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 특진 인원을 지난해 대비 6배 늘리겠다”고 했다.
마약 사범 검거 건수는 윤 대통령 발언 이후 크게 늘었다. 올해 3월 말까지 경기남부청이 검거한 마약사범은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장남 1명에 불과했지만, 이후에는 100명을 훌쩍 넘었다. 평택경찰서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마약을 유통하고 상습적으로 투약한 조직폭력배 등 26명을 검거해 19명을 구속했다. 수원서부경찰서는 27명, 용인동부서는 18명, 부천원미경찰서는 베트남에서 들여온 마약을 유통한 총책 등 74명을 검거했다. 경기남부청 강력범죄수사대도 110억대 멕시코산 필로폰을 반입한 일당 등 58명을 붙잡았다.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한 결과는 달콤한 성과로 이어졌다. 마약사범 단속 결과 덕분에 경기남부청에서만 10명 가까이 특진했다. 경찰은 "개인은 물론 가족·사회를 수렁에 빠트리고 국민 건강을 해치는 마약사범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벌이는 것은 경찰이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라고 여기며 마약단속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기는 분위기다.
한정된 경찰력이 마약에만 집중
마약단속의 당위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문제는 한정된 경찰력의 상당 부분이 하나의 이슈에만 집중되면서 일반 민생치안 업무가 소홀해지는 일이 실제로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마약 관련 수사대를 넘어 일선 경찰서에까지 전담 수사팀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앞서 올해 초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조직폭력배와 연관된 건설노조(건폭) 사건, 전세사기 사건은 강력범죄수사대와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등 각 기능에서 전담했다.
대통령이나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건들은 여전히 인력난을 겪고 있다. 경기도내 장기실종사건은 현재까지 모두 112건이지만 경기남부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총 8명) 내 장기실종사건 담당자는 단 1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특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0대 마약사범을 언론과 인터뷰하도록 하는 등 인권 침해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시·도경찰청에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에서도 우려 커져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한 한 일선 경찰서 경찰관은 “전담팀을 꾸리는 것도 좋지만 인력 충원 없이 기존 부서 인원을 투입하면 해당 부서 업무는 누가 하냐”며 “비단 우리 청이 아닌 다른 청도 마찬가지지만 대통령 말 한마디에, 특진에 경찰 전체가 휘둘리는 거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은 “대통령이 얼마 전 국고보조금 비리 수사 지침을 내렸는데 여기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사회적 이슈를 수사하는 것도 맞지만 민생치안 현장도 중요한 것 아니냐”며 경찰의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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