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해묵은 방탄국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언'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바로 '서약'으로 응수하며 모처럼 보조를 맞췄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내년 총선까지 감안하면 여야 모두 뱉은 말을 주워 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의힘에서 서약 불참 의사를 밝힌 건 김웅·권은희 의원 정도다. 민주당도 기류는 비슷하다. 김은경 혁신위는 당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를 요구하며 가세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정치권의 변화에 한편으로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이 같은 물결에 동참해야만 개혁일까. 헌법을 살펴보자. 의원 대의활동의 자주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국회 회기 중에는 불체포특권을 부여한다. 1603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독일 일본 등 대다수 국가들도 일부 차이는 있지만 인정하는 권리다.
헌법학자들은 이 권리가 의원 개개인이 아닌, 국회에 부여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내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국회의 특권이기 때문에 의원 300명이 함께 결정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 대표의 선언이나 국민의힘 의원들의 서약은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료 의원들이 표결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헌법 취지를 곡해할 우려가 있다. 김웅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교각살우'(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행정권이 입법권을 압도하는 상황에 대비한 조문"이라며 "헌법이 형해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은희 의원은 "(불체포특권은)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에 인정된 권한"이라며 "권은희에 대한 불체포특권은 포기할 수 있지만, 국회·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물론 국회의원들의 과거 행태를 보면 불체포특권은 괘씸한 부분이 적지 않다. 역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체포동의안 70건 가운데 고작 17건만 가결됐다. 의석수를 앞세워 의원들끼리 서로 감싸는 온정주의가 결합해 체포동의안을 선택적으로 부결시켜 온 것은 다수의 '횡포'로 비칠 만하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정치적 이해관계로만 풀어가면 자칫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칠 수 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구속력 없는 선언보다 향후 민주당 이 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국회 소집을 연기한다면 불체포특권을 자연스레 포기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국회법 개정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것도 방법이다. 선언이 아니라 제도로 체포동의안 처리 절차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필요한 건 불체포특권 포기 행렬이 아닌 실효성 있는 대책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