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할리우드 키즈'의 등장>
소속사 없이 직접 이메일 보내 오디션... DIY로 일군 성공
한국선 인지도 중심 캐스팅... Z세대 연예인들 "해외가 기회의 땅"
①한국 연예인 앞세워 해외 구독자 포섭 ②커지는 문화다양성 요구 맞물려 급변
"한국어 대사 더 늘어" 1인치 장벽 아닌 '무기'로
김윤진, 마동석, 윤여정, 이정재... 미국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로 진출한 한국 배우들이다. 모두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뒤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미국 대형 에이전시 등의 도움을 얻어 해외에서 어렵게 '일자리'를 얻었다.
요즘 해외 진출 양상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국내 대중에게도 얼굴이 낯선 한국 20대 연예인들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들이 기획한 해외 오리지널 작품에서 줄줄이 주연을 꿰차고 있다.
최민영(21)은 넷플릭스 미국 오리지널 '엑스오, 키티'에서 한국 고등학생 대(Dae) 역을 맡아 드라마가 영어권 주간 톱3(5월 15일~6월 4일)에 머물며 화제를 모으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애플TV플러스의 '파친코' 시리즈에서 김민하(28)는 일제강점기 한국 여성 선자를 연기해 각국 이민사회에 반향을 낳았다. 김우진(26)·윤재찬(24)·그룹 뉴키드의 이민욱 진권(22)은 워너브라더스 OTT인 HBO맥스 드라마 '옷장 너머로'로 7월 남미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굴지의 글로벌 OTT들이 한국 신인 양성의 요람이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신예들이 글로벌 OTT 드라마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뒤 되레 한국에 역수입된 새 '할리우드 키드'의 등장이다.
韓 식민 역사, 왕조 혈통, 청년 문화 조명하는 이유
이런 변화는 한국 연예인을 앞세워 한류에 친숙한 해외 구독자를 포섭하려는 글로벌 OTT의 전략과 이민 사회 성장으로 높아진 문화 다양성 요구가 맞물린 결과다. 해외에서 한국적 콘텐츠 제작 수요가 높아지면서 최근 1~2년 새 이뤄지기 시작했다.
식민지 경험과 고도성장, 계층 갈등 등 응축된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한 '한국 이야기'는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로 급부상했다. 그룹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중심으로 한 K팝 열풍으로 K팝이나 한국 청년 문화를 소재로 한 드라마까지 해외에서 제작되면서 한국 Z세대 신예들에게 글로벌 OTT 플랫폼 진출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엑스오 키티')와 애플TV플러스('파친코') 미국 본사는 한국적 콘텐츠의 시즌제 제작을 확정했고, 미국에 기반을 둔 OTT 훌루도 한국계 입양인이 서울에 와서 일하다가 그가 왕조 혈통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 '아메리칸 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역수입'된 Z세대 "인지도·영어 큰 장벽 안 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최민영과 김민하는 국내에 소속사도 없을 때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남의 도움 없이 직접 부딪히는 DIY(Do It Yourself) 정신이 도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 최민영과 김민하는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직접 지원했는데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아홉 번까지 연기 및 케미스트리(Chemistry·출연 배우들끼리의 궁합) 오디션을 거쳐 주역을 따냈다. 최민영은 오디션 공고에 첨부된 대본 파일을 내려받은 뒤 친구의 도움을 받아 2분 남짓의 연기 영상을 찍었다. 지원 이메일은 2021년 12월 31일 오후 10시쯤 마감 두 시간여를 코앞에 두고 보냈다. 당시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었던 최민영은 "언젠가 할리우드에 가보자'는 꿈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 작품 오디션을 경험해 보자는 마음에서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해외 시장은 사실상 인기 위주로 주연 배우 캐스팅이 이뤄지는 한국보다 '기회의 땅'이다. 최민영은 "공개 오디션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배우의 인지도를 1순위로 두고 캐스팅을 진행하지 않을 것 같았다"며 "언어 또한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배우를 찾고 있지도 않았다"고 지원 계기를 들려줬다. 당시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선 주연으로 섭외받기 어려웠던 최민영과 김민하를 비롯해 이민욱, 진권 등이 글로벌 OTT 드라마 출연에 도전하게 된 배경이다.
"개성·역사 뚜렷한 한국 청년"의 변화
글로벌 OTT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적 콘텐츠 기획에 나서면서 한국어는 예전과 달리 해외 진출의 걸림돌이 아니라 '무기'로 그 위상이 격상된 분위기다.
'옷장 너머로'에서 K팝 아이돌 대호 역을 맡아 드라마 홍보 차 7월 브라질로 출국하는 진권은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연기했다"며 "제작 초기부터 외국 제작진들이 한국적 요소가 들어가길 원해 대사 수정에도 참여했고 '실제 한국인이라면 이럴 것이다'란 의견을 내 그 부분이 대본에 반영되기도 했다"고 촬영 뒷얘기를 전했다. 다음 달 20일 공개될 '옷장 너머로'는 브라질의 평범한 10대 소녀가 옷장 속 신비로운 포털을 통해 K팝 그룹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다.
미국 등 해외에서 현지 스튜디오와 한국 배우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캐스팅 디렉터들에 따르면, 불과 5~6년 전만 해도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이야기는 아예 투자를 받지 못하거나 '영어 비중을 더 높여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요즘엔 현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기획한 드라마에 출연한 A 배우는 "대본보다 촬영할 때 한국어 대사가 늘어났다"며 "'한국인 캐릭터나 대사를 굳이 영어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였다"고 귀띔했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메일을 통해 "한국인이 미국 드라마에서 개성과 역사가 뚜렷한 사람으로 묘사되는 건 아시아인들을 '모범적 소수자'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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