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쇼크가 온다: 2-⑤ 교육의 재구성]
'학령인구 감소' 줄폐교 위기, 맞춤교육 활성화 기회로
구도심 텅빈 교실, 신도시 꽉찬 교실… 분산 필요해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3712번 김대중.'
전남 목포북교초 설립 100주년인 1997년 제작된 기념지에는 익숙한 이름이 있다. 30회 졸업생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3712번'은 졸업생 번호로, 김 전 대통령에 앞서 3,711명의 졸업생이 있었다는 뜻이다.
목포시 옛 도심에 위치한 북교초는 을미개혁 당시 소학교령에 따라 세워진 이래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 등 험난한 현대사 속에도 매년 수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지역 대표 학교다. 김 전 대통령도 고향 하의도에서 학교를 다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4학년 때 북교초로 전학했다. 학생이 가장 많았던 1969년엔 졸업자 615명, 재학생 3,456명에 달했다.
학생으로 북적이는 교정은 이제 옛날 얘기다. 북교초 6학년 학생, 즉 내년에 졸업할 학생은 21명뿐이다. 이마저도 졸업생이 갈수록 줄어들 판이다.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북교초 재학생은 5학년 19명, 4학년 17명, 3학년 19명, 2학년 8명, 1학년 12명이다. 인구 감소, 지방소멸, 도시 개발의 세 가지 현상이 겹쳐 구도심이 낙후된 결과다.
한 지역에 1,000명 이상-10명 이하 학교 공존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북교초 상황은 그렇게 어려운 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면, 도서 지역은 교육부가 학생 수 60명 이하일 때 이전, 통폐합, 분교장 개편 등을 통해 학교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하는데, 전남 초중고의 46%가 여기에 해당한다. 전남교육청은 올해 4월부터 자체적으로 적정 규모로 개편할 학교 기준을 '학생 10명 이하'로 낮췄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10곳 중 1곳(9.8%)은 개편 대상으로 남아있다.
아이러니한 건 학교 소멸 지역에도 곳곳에 '콩나물 교실' 학교가 있다는 점이다. 전남도청 이전으로 목포시와 무안군 일대에 조성된 남악신도시의 경우 행복초(2020년 개교)가 1,560명, 오룡초(2012년 개교)가 1,377명의 학생을 두고 있다.
지역 내 '학생 수 양극화'는 전국적 현상이다. 940만 명 이상이 사는 거대 도시 서울은 전교생 240명 이하 초등학교를 소규모 학교로 분류하는데 이런 학교가 올해 62곳(10.2%)에 달한다. 학령인구 감소가 특히 두드러지는 곳은 구도심으로, 올해 건대입구역 부근 화양초가 서울의 네 번째 폐교가 됐다. 반면 전국 초중고 교실 10곳 중 2곳은 과밀상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 현황에 따르면, 전체 초중고 학급 23만6,254개 중 4만4,764개(18.9%)가 학생 수 28명 이상의 '콩나물 교실'이었다.
학생 너무 많아도 적어도 교육엔 제약 요건
'텅 빈 교실'과 '콩나물 교실' 모두 좋은 교육 환경이 아니다. 과밀 학급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부족하기 쉽고 학교폭력 문제에 취약하다. 코로나19 유행 국면에선 집단 감염을 피하기 위해 전면 원격수업(60인 이하 소규모 학교는 선택사항)을 해야 했다. 교원단체에서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이하로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교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과소 학급은 학생이 친구와 교사를 다양하게 만날 기회가 적어 사회성을 기르는 데 제약이 따른다. 교사가 맡는 학생 수가 적은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으나 현실에선 교사 1명이 2, 3개 학교에서 겸임·순회 근무를 하는 일이 잦다.
14일 찾아간 전남 영암도포중은 전교생이 13명으로, 1학년은 7명, 2·3학년은 각각 3명으로 학급을 이루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은 교실을 쓰던 아이들이라 교우관계는 좋지만 다수의 참여가 필요한 체육, 토론교육 등은 충분히 경험하기 힘들다. 1학년 남학생은 "학교 간 축구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팀을 꾸릴 수 없다"고 말했다. 3학년 여학생은 "모든 선생님이 각 학생에 대해 다 알고 있다"면서도 "다양한 친구와 우르르 모여서 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이 학교 교사는 교장 포함 9명이다. 교사당 담당 학생 수는 적지만 학생 규모가 작으니 보건교사, 상담교사, 사서교사를 따로 둘 형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학교를 통폐합하는 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늘어나는 통학거리가 대표적 문제다. 영암도포중은 통학버스가 없어 학생들이 인근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같이 이용한다. 채형렬 교장은 "지금도 30~40분씩 걸려서 학교에 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인근 학교와 통합해 버리면 통학시간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몇 년간 하루 왕복 2시간씩을 의미 없이 보내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신도시에서 농어촌으로 통학… "맞춤형 지도 가능"
양극단 교육환경을 해소하려면 적정한 '통합'과 '분산'이 필요하다. 전남교육청은 학교 규모를 적정하게 유지하고자 △과밀학급 학교에서 농어촌 소규모 학교로 전입하는 '제한적 공동학구제' △2개 학교가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공동수업제 △초·중학교, 중·고등학교가 교사와 시설을 같이 활용하는 통합운영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제한적 공동학구제 사례는 무안군 삼향동초에서 찾을 수 있다. 2013년 전교생이 49명에 불과했던 이 학교는 공동학구제 시행으로 2016년부터 남악신도시 학생이 다닐 수 있게 되자 학생 수가 지난해 105명으로 늘어났다. 올해 기준 전체 학생의 60%가 신도시 거주자다. 학생이 늘어나면서 학교에는 학생 심리·정서를 지원하는 상담교실 '위(Wee)클래스'도 설치됐다.
과밀학급에 지친 학생과 학부모들은 20명 이하의 적정 인원이 맞춤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삼향동초의 교실 환경에 만족감을 표했다. 남악신도시에 거주하며 네 아이를 이 학교로 진학시킨 최인숙(45)씨는 "기초학력이 부족하면 선생님이 일주일에 1, 2시간씩 따로 보충 수업을 해 주는 점이 좋다"며 "1학년 때 글 읽기가 잘 안되던 아이가 2학년인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농어촌 학교라 방과후수강료가 전액 지원되고 교육청 차원에서 통학버스가 운영되는 점도 장점이다.
학생 분산을 통해 적정 규모의 교실을 꾸리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 규모 양극화를 방치하면 학생이 많은 학교에 투자를 더 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양질의 무상 방과후프로그램,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유지 등 유인을 제공하면 밀집 지역에서 인근 지역으로 학생 이동을 충분히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과 분산이 학령인구 감소 위기 극복과 최적의 교육환경 조성으로 이어지려면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통합운영학교제의 경우 통학 거리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장점이 있어 전국 124개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학사 체계나 교사 양성 체계가 다른 상하급 학교가 통합되다 보니 애로 사항이 적지 않다. 김신안 전남교사노조 위원장은 "수업 시간부터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으로 다르다 보니 수업 중인 체육관에 쉬는 시간을 맞은 아이들이 뛰어들어오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학교 간 통합 운영이 '화학적 결합'에 이를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17개 시도교육청은 학교급이 다른 교사의 교차 지도를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교원단체의 문제 제기로 법안 발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김 위원장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는 자격증이 달라서 수업을 통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절반 쇼크가 온다' 글 싣는 순서
제1부 인구 충격 진앙지, 절반세대
①소멸은 시작됐다
②2038 대한민국 예측 시나리오
③절반세대 연애·결혼·출산 리포트
④절반세대 탄생의 기원
제2부 무너진 시스템 다시 짜자
①가족의 재구성
②직장의 재구성
③이주의 재구성
④병역의 재구성
⑤교육의 재구성
⑥연금의 재구성
제3부 절반세대가 행복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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