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교수 시절 대법원 판결문 비판
"어려운 표현 자제·판결문 구성 변화해야"
국어책임관·판결 작성 매뉴얼 신설 제안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 시절 "대법원 판결문이 국민 소통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하는 논문을 썼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窓)이 판결문인데, 이 소통 수단이 비(非)법률 전문가 눈높이로 보기엔 너무 어렵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대법원 판결문, 소통 기능 부족"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 후보자는 2018년 5월 '대법원 판결서 개선의 당위성과 방향성'이라는 논문에서 "대법원 판결문이 소통 수단으로서의 효용과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급심을 거쳐 심리된 사건을 되돌아보고 판단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종착점"이자 "법률 전문가 또는 국민에게 논의거리를 제공하여 소통을 촉진하는 매체"여야 할 판결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권 후보자는 실제 제기되는 비법률 전문가들의 비판을 논문에 담았다. 국어학자 등 외부 인사들의 평가, 대구지법이 과거 일반인 등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대법원 판결문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률 용어가 낯설고 △문장이 지나치게 길어 이해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주로 언급했다고 권 후보자는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대법원 판결문의 소통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 후보자는 "사법권은 국민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고 국민에 의해 통제돼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판결문 개선은 법원의 민주적 토대를 강화한다"며 "대법원이 설득력 있고 알기 쉬운 판결문을 쓰면 국민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대법원의 존재 이유를 고려하면 관행이나 현실적 여건을 내세워 개선의 필요성에 눈감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표현 쓰지 말자"
권 후보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대법원 판결문에 쓰이는 표현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률용어를 일상 용어로 바꾸고,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외국어 투 표현을 순화하자는 것이다. 권 후보자는 '일반적인 문장은 평균 11어절 안팎으로 구성되는 반면, 판결문 평균 문장 길이는 46.7어절'이라는 한 국어학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판결문을 좀 더 간결한 문장으로 풀어써야 하고, 관계도와 표 같은 보조 수단 활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권 후보자는 판결문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①하급심 판결문 공개가 제한돼 있는 점을 고려해, 대법원 판결문에도 사건의 핵심 사실관계와 소송 경과 등을 압축적으로 적어두고 ②사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고 이유의 내용도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 권 후보자는 "법리와 개별 사건에 대한 구체적 논증을 강화해 판결문의 답변·설득 기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후보자는 끝으로 판결문 개선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제시했다. ①문서 작성 소프트웨어에 자동 교정 기능을 장착하거나 ②대법관에 국어책임관을 둬서 중요 판결을 감수하게 하거나 ③판결문 작성 매뉴얼을 만들자는 것이다. 권 후보자는 "변화를 획일적으로 추구하는 건 위험하다"면서도 "전에 하던 대로만 하려는 사고방식을 폐기하는 것, 더 좋은 글을 향한 의식적인 고민과 노력만큼은 모든 법관에게 일률적으로 요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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