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크기 비슷한 '지구 쌍둥이' 행성
외계인 가능성에 큰 관심 끌었으나
고온·태풍 환경 밝혀지며 탐사길 '뚝'
최근 외계행성 탐사 활발해지며 재조명
NASA·유럽 등 2030년 전후 탐사 러시
국제 금성 관측 캠페인은 한국이 주도
금성 관측용 초소형위성 프로젝트 첫발
우주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행성. 지구와 비슷한 크기·질량으로 '쌍둥이 지구'라 불리는 행성. 하늘에서 태양, 달 다음으로 가장 밝아 대도시에서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친숙한 행성. 바로 금성(샛별)이다.
한때 화성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금성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랬던 금성이 최근 들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1989년 탐사선 '마젤란'을 보낸 이후 금성에 발길을 끊었던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이 40년 만인 2029년 새 탐사선을 보내기로 했으며, 유럽우주국(ESA)과 중국, 인도 등도 금성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혹시 외계인?… 섭씨 467도의 그곳엔 황산구름·태풍만
인류가 막 우주 항해 기술을 익혔을 무렵, 금성은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태양과 조금 더 가까울 뿐 지구와 질량·크기가 비슷하니, 미국 플로리다 혹은 열대우림 정도의 환경일 것이라 여겼다.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가장 높아 보였다. SF소설·영화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금성 괴물과 싸우는 영화 '선사시대 행성으로의 항해'(1965년)가 개봉됐고, '금성을 둘러싼 두꺼운 구름이 사실 외계인이 관측을 방해하기 위해 만든 보호막이 아닐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인류가 화성보다 금성에 먼저 탐사선을 쏘아 올린 것도 이런 대중적 관심과 무관치 않았다.
하지만 실제 우주로 나가자 기대는 무너졌다. 금성은 열대우림보단 지옥도에 가까웠다. 50~70km 고도에 위치한 구름은 물이 아니라 황산이었다. 물은 대부분 우주로 소실됐다.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였고, 온실효과로 평균 온도는 약 467도(740K)에 달했다. 초강력 태풍의 2배에 해당하는 초속 100m의 강풍도 불었다.
생명체의 존재나 인간 거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금성을 향한 관심은 급격하게 식었다. 연구비는 화성에 쏠렸다. 나사는 화성에 탐사로버 5대, 궤도선 4대, 착륙선 2대를 보내는 동안 금성엔 단 한 대의 탐사선도 보내지 않았다. 태양을 등지는 '역광 구도'여서 관측에서도 소외됐다. 태양 광선은 민감한 센서에 고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허블망원경은 자세 제어 장치(자이로스코프)가 노후화하면서, 2011년 관측을 마지막으로 금성 등 내행성 관측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최신 우주망원경 제임스웹은 '내행성은 관측 안 한다'고 아예 공식화했다.
외계행성 탐사 늘면서 금성 가치 재평가
이랬던 금성이 외계행성 탐사가 활발해지면서 다시 비상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원격 관측을 통해 이뤄지는 외계행성 탐사는 행성 탄생과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필수 연구 분야다. 외계행성을 처음 발견한 미셸 마요르, 디디에 쿠엘로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는 201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인류가 확인한 외계행성은 6월 27일 현재 5,463개에 이른다.
주된 관심은 외계 생명체의 유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해비터블존'(생명체 거주가능영역)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제2의 지구'로 불리는 케플러-186f처럼 항성(태양처럼 빛을 내는 행성)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암석형 행성일 경우, 지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고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크게 올라간다.
하지만 이 기준은 아직 거칠다. 금성 역시 해비터블존 경계에 가깝지만 생명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지구와 금성의 차이를 만들어낸 세부 조건을 규명해낸다면, 매우 정교한 기준을 새로 제시할 수 있다. 금성에 실망했던 바로 그 이유가 다시금 금성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금성 미스터리:구름, 바람, 미확인 흡수체
금성은 비밀이 많다. 우선 금성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미확인 흡수체'의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다. 금성을 둘러싼 것이 모두 황산 구름이라면, 자외선으로 촬영했을 때 밝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 금성의 절반은 빛을 흡수해 어둡게 찍힌다. 과학자들은 황 아닌 미지의 성분이 구름에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황이 섞인 화합물이 그 후보지만, 일부 학자들은 미생물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초순환'이라고 불리는 금성 바람의 발생 및 유지 과정이나, 구름의 재료가 되는 이산화황의 출처를 밝히는 것도 숙제다.
과학자들은 미확인 흡수체와 풍속, 이산화황 농도의 연관관계에 주목한다. 관측 결과 이들의 변화는 서로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①화산 등의 영향으로 구름 내 이산화황의 양이 변화하고 ②이산화황이 미확인 흡수체의 양을 변화시키며 ③태양 에너지 흡수량이 바뀌면서 바람의 속도를 변화시킨다'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아직 모두 가설일 뿐이다.
다시 시작된 '금성 러시'…한국도 관측 박차
우주강국들은 금성 탐사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ESA는 2031년 금성 탐사선 '인비젼'을 발사할 예정이다. 나사는 2029년 '다빈치'와 2030년 '베라타스'를 발사할 계획이며, 중국(보이스 미션)과 인도(슈크라얀-1)도 금성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의 금성 탐사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주도한다. 지난해 기후및지구과학연구단 행성대기그룹(PAG)을 출범시킨 IBS는 초대 단장으로 국내 유일의 책임자급 금성 연구자, 이연주 박사를 영입했다. 독일항공우주센터(DLR)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이 단장은 인비젼 탑재체 중 하나인 분광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IBS는 ESA, JAXA와 함께 '금성 관측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ESA와 JAXA가 공동 발사한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 JAXA가 발사한 금성 탐사선 '아카츠키', 그리고 한국 등의 지상 망원경이 금성을 동시에 관측하는 게 임무다. 금성 미확인 흡수체를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선 동시 관측이 필수다.
그런데 이번 관측은 베피콜롬보가 금성을 바라보고 있는 9월 말에 가능하며, 수성 궤도에 진입하는 2025년 이후에는 아예 동시 관측 참여가 불가능하다. 금성 궤도를 돌고 있는 아카츠키도 2024년 3월 임무가 종료된다. 다음 세대의 금성 탐사선들이 금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8년 정도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난관을 이 단장은 지구 저궤도에 금성 관측용 위성을 직접 띄워 극복하고자 한다. 초소형 위성으로 해외 탐사선 관측 자료를 대체하는 '금성 장기 프로젝트'(CLOVE)다. 올 하반기 중 회사를 선정해 금성 관측용 탑재체를 개발하고, 2026년 발사하는 게 목표다. 3년마다 초소형 위성을 띄워 지속적으로 금성을 관측하겠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미확인 흡수체의 모든 파장 영역을 관측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결과도 기대할 만하다"고 내다봤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