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라면·과자·빵 줄줄이 가격 인하
가격 조정 부담·과점 체제에 가격 안 내려
라면·과자 가격 내린 이듬해 다시 인상
'질소과자'처럼 내용물 부실 가능성 우려
라면과 과자, 빵 가격이 줄줄이 내리고 있습니다. 가공식품 가격 인하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이후 13년 만이에요. 물가 상승세가 계속되자 정부가 식품업체에 가격 인하를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2010년에도 고물가로 서민들이 신음하자, 정부가 나서 식품업체에 가격 조정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대표적 서민식품의 가격 인하는 당장은 반갑지만, 계속 좋기만 한 걸까요. 그 속사정을 알아봤습니다.
정부는 왜 13년 만에 라면 가격 조정에 나섰을까
정부가 총대를 메고 식품업계를 압박한 것은, 가격은 한번 오르면 떨어질 줄 모르는 특성이 있어서죠. 전문용어로 '하방경직성'이라고 합니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에 '가격 인하'는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가격을 낮추리란 기대는 접는 게 좋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조정은 그 자체로 비용이 수반된다"며 "가격을 올리면 매출이 증대돼 가격 변경 비용을 감당하고도 추가 이익이 발생하지만, 가격을 내리면 변경 비용에 매출 감소까지 겹쳐 기업 입장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박재홍 영남대 식품경제외식학과 교수는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리면 (예상되는) 수익증가분에 맞춰 공장 라인 증설, 직원 상여금 지급, 신규 투자 등의 경영계획을 짠다"며 "그런데 갑자기 가격을 낮추면 이런 사업 및 경영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어 인하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바로 가격을 내리기는 곤란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점시장도 쉽게 가격을 내릴 수 없는 요인이죠. 라면시장은 농심과 오뚜기, 팔도와 삼양이 대부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과시장은 롯데, 오리온, 해태 크라운이 오랜 기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돼야 하나, 과점시장은 공급자(제조업체)가 수요자(소비자)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어 가격경쟁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기술 혁신 등을 통해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어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 한 자발적 가격 인하는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수요자의 가격 저항도 낮습니다. 라면과 과자 등은 대표적인 서민식품이기 때문에 가격 조정이 구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이은희 교수는 "라면이나 과자 등의 가공식품은 고소득층보다 일반 서민들의 구매 빈도가 훨씬 빈번하고, 특히 주머니가 얇은 청년층이나 1인 가구는 수시로 구매한다"며 "요즘처럼 외식 물가가 높을 때 라면 등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만족도가 높아, 서민들이 조정된 가격에 바로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2010년 라면 가격 소폭 내렸지만, 이듬해 대폭 올렸다
13년 만의 가격 인하에 서민 부담이 줄었지만, 전문가들은 "마냥 웃을 일은 아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부 등쌀에 떠밀려 기업들이 가격을 인하했지만, 가격 인하에 따른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교묘하게 전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성태윤 교수는 "정부가 개별 상품(가격 결정)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기업이 제품의) 양이나 질을 조정하거나, 가격 조정에 따른 부담 비용을 나중에 한번에 반영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가격담합이 의심되는 식품업체를 상대로 조사를 요청하면서 제과·제빵업체들이 곧바로 라면과 과자 등 가공식품 가격을 인하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1년 해당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의 이유로 가격을 올렸습니다. 가격 상승 폭(평균 6%대)은 전년 가격 인하 폭(평균 4%대)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가격을 낮추고도 반대로 가격 인상 효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제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거두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고 합니다. 봉지를 뜯었더니 내용물이 조금밖에 없는 '질소과자' 기억하십니까. 질소과자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였어요. 환율이 치솟아 원자재 값을 감당하기 어렵자, 제과업계는 과자 대신 질소를 넣어 부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가를 낮춰, 가격을 맞췄습니다. 대신 우롱하듯 줄어든 내용물로 소비자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이 같은 정부와 식품업체의 행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정부가 가격담합 등 식품업체의 부정행위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식품 원가비율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소비자들부터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2014년 9월 대학생 3명이 '질소과자'로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이벤트를 진행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그 영향으로 '질소과자' 논란이 확산해 같은 해 12월 국산과자 원가 비율이 처음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은희 교수는 "앞다퉈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개선)를 내세운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면, 소비자들이 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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