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앞에서 무뎠던 문 정부 적폐청산
카르텔 척결은 진영 넘어서길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엔 추상 같았지만 ‘내 편’ 앞에선 더러 물렀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건폭 낙인이 찍혀 고강도 수사를 받는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강요 행태는 예전부터 지적됐다. 문 정부 시절인 2021년 9월 한국일보 기획 보도로 건설노조의 무리한 행위가 조명됐다. 그러자 당시 국무조정실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100일간 합동 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100일 뒤 실적은 과태료 4건, 구속 1건에 그쳤다. 정권과 가까운 노동계에 온정주의가 작동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노동을 잘 아는 문 정부가 임기 중 이 문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지금과 같은 건폭 몰이로 비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민단체 회계 문제에 대한 대응도 아쉬웠다.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2020년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를 되돌아볼 계기가 됐다”며 “기부금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뾰족한 후속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편에만 나긋나긋하다는 평가가 문 정부에 시나브로 쌓였다. 이는 적폐청산으로 시작한 문 정부에 '내로남불'의 오명을 덧씌웠고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출마 선언부터 지금까지 ‘이권 카르텔 타파’를 여러 번 말했다. 3일엔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라고 선언했다. 전 정부가 방치한 노동계와 시민단체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윤 대통령은 기득권의 지대(地代) 추구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지대는 공급자 카르텔이 똘똘 뭉쳐 시장의 공급을 왜곡해서 얻는 초과 이윤, 즉 비효율을 뜻한다. 지대 추구 타파는 공감이 가는 과제이다. 단, 적폐청산과 달리 끝까지 국민 공감을 잃지 않으려면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국민들은 노동계·시민단체는 민주당 편이라고 본다. 법조인이나 고위관료 같은 사회 엘리트는 윤 대통령, 국민의힘과 가깝다고 여긴다. 그런데 엘리트 카르텔도 있다. 판사, 검사, 세무공무원,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들이 누리는 전관예우가 그렇다. 공직자들이 퇴직하고 대형 로펌에 들어가서 정부 기관에 로비 창구 역할을 하며 그 대가로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많은 국민은 의심한다.
전·현직이 끈끈하게 밀어주고 당겨주며 수사와 소송, 인허가, 세무조사 등으로 위축된 개인과 기업의 불안감에 기대어 고가의 수임료 시장을 형성한다. 이런 가격 거품이 다름 아닌 지대일 것이다. 환자 건강권을 쥔 의사 단체의 막강한 협상력에 밀려 역대 정권마다 어려움을 겪는 의대 정원 확대도 지대와 관련이 있다. 의사들의 의사 수 확대 반대는 공급을 제한해 과점 상태를 지키려는 지대 추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의 관심이 노동계와 시민단체, 태양광을 넘어 전관예우와 의대 정원 확충에 닿길 바란다. 역사책엔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해체,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같이 편을 넘어선 개혁이 크게 실렸다. 카르텔 타파도 그런 자리에 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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