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러, 핵 도발 가능성은 낮아" 전망
전력 불안… '핵 사고' 위험성은 상존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에 점령된 상태다. 자포리자 원전을 '핵 인질'로 삼고 대치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비방전이 거칠어지면서 핵 재앙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양국은 서로 상대국이 원전 파괴를 모의 중이라고 주장한다. 냉각 시스템 가동을 위한 원전 주전력선이 갑자기 끊기는 등 돌발 사고 위험도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 원자로 지붕에 폭발물 설치"… IAEA 조사도 못 해
5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는 자포리자 원전 인근 카호우카댐이 지난달 6일 파괴된 이후 원전 주변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불씨를 댕긴 건 우크라이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테러 시나리오를 검토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방사능 유출 등을 노린 테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엔 좀 더 구체적 정황을 내놨다.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 원자로 3, 4호기의 지붕에 폭발물로 추정되는 물체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포리자 원전을 위험하게 하는 건 러시아"라고 했다.
러시아도 반격했다. 러시아 정부는 5일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원전을 겨냥한 사보타주(파괴 공작)를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상황이) 매우 긴장돼 있다"며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팩트 확인을 위해 현장을 찾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별 소득 없이 돌아갔다. 지난해 3월부터 러시아가 통제 중인 원전 내부 접근이 막혀 조사를 하지 못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5일 성명에서 "원전에서 지뢰나 폭발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조사를 할 수 없었던) 원자로 3, 4호기 지붕과 터빈홀, 냉각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라"고 러시아에 요구했다.
러시아 도발 가능성은 낮지만… 전력 끊기면 '핵 재앙'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말로 격돌하고 있지만 실제 원전을 무기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서방 전문가들 시각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핵 위협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매우, 매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의 구두 도발은 '거짓 깃발 작전'(상대가 먼저 공격했다고 꾸며내 공격 빌미를 만드는 기만 작전)이거나 자포리자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군사 작전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11, 12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겨냥한 시위라는 해석도 있다.
핵 사고를 일으켜서 러시아가 얻을 것은 사실상 없다. △방사능 영향은 러시아 점령지뿐 아니라 러시아 본토에도 미치며 △군사적 이득은 없이 외교적 고립만 심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윌리엄 알베르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연구원은 "자포리자 원전 지역에서 바람은 동쪽으로(러시아 방향) 분다"며 "러시아의 원전 파괴는 자해 행위"라고 CNN에 말했다.
원전 내 안전사고 위험성은 상존한다. 전력 상황이 극도로 취약한 탓이다. 지난 4일에도 자포리자 원전의 주전력선이 끊겼다 12시간 만에 복구됐지만 예비 전력 공급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고 IAEA는 5일 밝혔다. 핵연료봉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가 공급돼야 하는데, 전력이 끊기면 냉각시스템이 멈춰 멜트다운(노심용융)과 방사능 유출이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포리자 원전은 주전력선 1개와 보조 송전선 1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카호우카댐 폭파 후 냉각수를 공급하는 저수지 수위가 낮아진 것도 문제다.
한편 러시아는 6일 미사일 공격을 재개했다. 폴란드 국경과 가까운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를 순항미사일로 타격해 최소 4명이 숨졌다. 집 100채와 자동차 50대도 파괴됐다고 안드리 사도비 르비우 시장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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