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방식이 바뀌면 새말이 생긴다. 오늘날 사이버 세상을 누리고 있으니 '가상'이라는 말의 쓰임도 부쩍 잦다. 가상이란 실물은 아니지만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을 이른다. 얼마 전만 해도 '사이버'가 더 많이 쓰였는데, 요즘 사이버와 가상은 의미 영역을 조금씩 구분하는 듯하다. 사이버는 주로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망을 포괄하는 데 비해, 가상은 마치 인간 삶과 같은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영역을 맡는다.
우리가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인터넷상에서는 가상의 상점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통해 상거래를 한다. 여기서는 실물 화폐가 아닌 '가상 화폐'가 쓰인다. 이처럼 실제 세계와 비슷하게 구축된 '사이버 공간'에는 인간처럼 만들어 놓은 '사이버 인간'이 있다. 1998년에 등장한 가수 아담은 한국에서 유명한 첫 사이버 인간이다. 이제는 개인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맺어지는 가상의 가족관계, '사이버 패밀리'도 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가? 사이버 삶에도 실세계처럼 집단 괴롭힘이 있나 보다. 놀랍게도,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욕설과 험담으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 있다. 누리꾼들은 이것을 '사이버불링'이라 부른다. 또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불법 행위와, 해킹이나 불법적인 정보 악용 등에 해당하는 '사이버 범죄'도 있다. 다행인 것은 마치 판도라 상자에 남아 있던 희망 요정과 같이, 사이버 세상에도 '영리한 군중'이 있는 점이다. 영리한 군중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토론과 심의를 통해 정치권을 비판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선진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깨어있는 참여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가상 인간이 등장한 지도 어느덧 24년째다. 최근 한 식품 회사에서는 홍보를 위해 가족 단위의 가상 인간을 선발했다고 한다. 여행 회사에서는 특정한 가상 인간으로 마케팅에 성공했고, 어느 홈쇼핑에서는 쇼호스트로 가상 인간을 내세워 완판했다는 뉴스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상 인간에 대한 몰입도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가 높고, 광고모델로 활동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진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가상 인간과는 감정을 교류할 수 없다는 점을 든다. 가상 공간에는 가상 인간이 있지만, 가상 인간이 진짜 인간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가상이 아닌 실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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