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명백한 직권남용
국민은 안중 없이 자기정치 판 키우기
논란 키워 얻은 이름으로 큰 정치 못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백지화로 맞대응한 것은 누가 봐도 ‘오버 액션’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오해가 없도록 해명하고 합리적 노선을 채택하면 될 일이다.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거하겠다”니, 도로 건설이 원 장관이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개인사업인가. 세금으로 추진되는 1조8,000억 원 규모 국책사업은 애초에 국민 편의의 문제이지 장관의 기분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대로 대통령 공약을 독단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직권남용이자 월권”이다. 원 장관과 여당은 민주당이 사과하면 재추진하겠다고 수습 중인데 국민 인질극이 따로 없다. 2년 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노선 종점이 지난 5월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 가까운 곳으로 변경된 것에 의심을 품는 건 무리가 아니다. 그 여파가 왜 양평군민들에게 미쳐야 하는지 도통 납득할 수 없을 뿐이다.
고속도로를 묻고 정치생명을 걸어 원 장관은 거대한 도박판을 벌였다. 그는 김 여사 땅의 존재를 사전에 알았거나 압력을 받았다면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겐 “민주당 간판 걸고 붙자”고 했다. 이처럼 판을 키우는 이유 또한 다수가 짐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충성심을 내보이고 대중에겐 자기 존재감을 야당 대표급으로 끌어올리려는 계산일 것이다. 그는 이미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 건설노조원 분신 방조 의혹 제기 등으로 대통령 기조에 부응하고 보수 지지층에 어필해 왔지만 지금이 크게 베팅할 시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한동안 잊힌 정치인으로 살아왔기에 원 장관은 이렇게라도 이름값을 높이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박이 흔히 그러하듯이 원 장관은 얻은 것보다 더 많이 잃고 있다. 권력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동안 원 장관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 땅 존재를 인지했다는 보도가 나와 “사퇴하라”는 댓글 포화를 받는 것은 오히려 사소하다. 제대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조선일보의 건설노조원 분신 방조설 보도에 섣불리 부응해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게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 것은 심각하다. 월간조선이 오보에 대해 사과한 뒤에도 그는 의혹을 거두거나 사과를 표명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국회에서 “정치인 이전에 인간이 돼야 한다”고 했겠나.
원 장관은 지금 국민들 마음속에 정치인 원희룡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원희룡은 어떤 정치인인가’ 생각할 때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국책사업을 무산시키는 데에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각료. 자기 정치를 중시하느라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 각종 시험에서 입증된 저 명석함을 권력을 쥐기 위한 계산에 쓰는 인물. 이것이 정치인 원희룡의 본질이라면, 유권자들이 그렇게 파악한다면, 그는 몸값을 키웠다고 착각하겠지만 더 큰 정치의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논란을 만들어 이름을 떨치는 것과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는 1년 전 칼럼(‘수재 원희룡에게 필요한 것’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614200005239)에서 원 장관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보여준 합리성과 공동체적 시각을 회복하기를, 더 나은 정치인의 길을 선택하는 용기를 내 주기를 당부했었다. 지금 원 장관의 모습은 그래서 적잖이 씁쓸하다. 지금이라도 원 장관이 일부 지지층의 환호를 걷어내고 다수 국민의 실망을, 자신의 타락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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