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민법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법을 전공하지도 않았거니와 '구거, 몽리자'와 같이 어려운 표현이나 우리말에서 어색한 번역 투 표현도 있고, 문장이 너무 길어 해석이 여러 가지로 가능한 경우도 있기에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일상어와 법에서 쓰이는 의미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과실(果實)'도 그러한 예로, 법에서는 '원물(元物)에서 생기는 이익'을 말한다. 열매뿐 아니라 우유, 양모 등 천연의 산출물을 천연과실, 사용 대가로 받는 이자, 집세 등은 법정과실이라 한다.
이자는 왜 과실이 되었을까. 외국의 법률 용어를 그대로 직역하다 보니 생긴 일로, 하시우치 타케시·홋타 슈고의 '법과 언어'에 따르면 과일뿐 아니라 토양 산물 또는 이익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라틴어 'fructus'를 '과실(果實)'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법의 영향을 받은 우리 민법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일상어와 전문어의 차이는 흔한 일이지만 이 경우는 번역의 문제로 보인다.
65년 만에 민법을 전면 개정한다고 한다. 이번에 법이 바뀌면 수십 년 동안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쓰는 말도 수십 년 후에는 옛말이 될 텐데,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그대로 둔다면 수십 년 후에는 더욱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법에서 단어 하나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바뀌는 표현이 기존 표현의 의미를 왜곡하지는 않는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민법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이기에, 번역 투 표현이나 비문, 사전에 없는 표현 대신 쉽고 간결한 표현을 담아 수십 년 후에도 이해하기 쉬운 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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