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간병 어려움 심각" 82%···"경제적 준비돼 있다"는 27%뿐

입력
2023.07.15 04:30
수정
2023.07.26 15:51
14면
0 0


한국은 2025년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보니 돌봄, 부양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대부분 노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수발 등의 신체적 도움이 필요한 간병 돌봄은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 누구에게나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간병이 필요할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5월 26~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사회의 간병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간병으로 인한 가정경제 및 사회문제, 심각하다는 의견 다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힘든 간병 때문에 가족 구성원 전체의 삶이 위협받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격한다. 장기간 간병으로 인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 탓에 직장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비급여인 간병비를 견디다 못해 발생하는 ‘간병파산’, ‘간병살인’이란 비극적인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2%가 한국 사회에서 간병으로 인한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가족 해체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간병이 필요한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한다. 4명 중 1명(24%)이 현재 병을 앓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으로 인하여 간병이나 수발 등의 신체적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 있으며 그 대상으로는 부모(52%), 배우자(17%), 응답자 본인(13%), (외)조부모(12%) 등의 순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38%는 과거 혹은 현재 간병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간병 기간은 1년 미만(60%)이 가장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95%는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질병, 장애, 사고 등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경제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간병이 갑자기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대응할 준비는 되어 있을까? 본인이나 가족이 아플 경우를 대비한 경제적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는 응답은 27%뿐이었다. 그나마 개인이 현실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간병과 관련된 민간보험(특약 포함)에 가입되어 있다는 응답은 29% 수준이다. 간병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경제적 준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사전에 이를 대비하려는 노력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갑자기 간병이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대응이 힘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아프면 전문 간병인이 간병해 주길 원해

누군가를 간병하는 문제는 ‘누가 할 것인가?’가 언제나 핵심 이슈이다. 질병 혹은 장애로 인해 신체적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누가 주로 간병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본인 외 다른 가족이 간병했다는 응답이 63%로 가장 많고, 응답자 본인(48%), 간병인(25%), 요양시설(24%) 등의 순이었다(복수응답). 혈연관계인 사람이 간병했다는 응답이 제3자 혹은 기관이 간병했다는 응답보다 높게 나타났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간병이 필요한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날까? 부양자 관점에서 부모와 자녀 간병을 구분하여 살펴보았으며, 피부양자 관점에서는 응답자 본인이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질문했다. 나 혹은 배우자의 부모님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여 간병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족 등 보호자가 직접 간병하겠다는 응답은 55%로 전문 간병인을 고용해서 간병하겠다는 응답(45%)보다 높았다. 같은 질문을 자녀가 있는 응답자에게 물었을 때에도, 가족이 직접 자녀를 간병하겠다는 의견(75%)이 다수였다. 다만 응답자 본인이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달랐다. 내가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전문 간병인이 간병해 주기를 원하는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55%). 내 가족이 아플 때에는 보호자가 돌볼 것이지만, 내가 아플 때는 가족들에게 간병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간병 담당의 성별 불균형 존재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가족이 아플 때 간병을 주로 책임지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먼저 간병이 필요한 대상이 부모인 경우 응답자 본인이 간병을 맡아 하겠다는 응답이 39%로 가장 많고, 요양보호사나 간병인(23%), 부모님의 배우자(16%) 순이다. 자녀가 간병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응답자 본인(52%), 나의 배우자(26%), 요양보호사나 간병인(11%) 순이다. 응답자 본인이 아프게 되면 나의 배우자(38%), 요양보호사나 간병인(26%), 나의 어머니(22%)가 실제로 간병을 많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여기서 간병을 책임지는 사람의 성별 불균형 현상이 두드러진다. 여성 중에서는 42%가 자신이 부모의 간병을 책임질 것이라고 답해, 남성의 응답(36%)보다 높았다. 간병이 필요한 대상자가 자녀인 경우, 여성 중에서는 73%가 자신이 자녀 간병을 책임지고 배우자가 간병을 책임질 것이라는 응답은 5%에 그쳤다. 반면 남성 중에서는 27%만이 자신이 자녀 간병을 책임지고 52%가 배우자가 간병을 책임질 것이라고 답했다. 본인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올 경우에도 여성 중에서는 31%가 나의 배우자가 간병을 책임질 것이라고 본 반면, 남성 중 나의 배우자가 간병을 책임질 것이라는 응답은 45%로 더 높았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간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재조명해야

우리는 앞으로 간병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람들은 가족의 간병 문제는 가정 내에서만 해결하기는 어렵다(82%)고 본다. 더불어 간병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잘 이뤄져 있다는 응답은 17%에 불과했고 개인의 간병을 위한 국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89%)고 답했다. 그간 간병 돌봄의 책임과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어 오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개인 혹은 가족이 혼자서 해결할 수 없으며 국가가 간병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만약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내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물었다.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가족 외에 의논할 사람들이 있다’는 응답은 70%였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빌려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있거나 병이 들거나 아플 때 나를 간호해 줄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각각 54%, 44%로 나타났다. ‘의논 → 경제적 지원 → 간호’로 갈수록 사회적 자본의 강도가 약해지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소득 수준별로 보면, 가구 소득이 200만 원 미만인 가구에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다는 응답이 가장 낮았다. 취약계층일수록 돌봐 줄 사람이 없으므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고 간병 등의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혼자 대처할 방법이 없다. 이는 간병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도 같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간병제도 마련이 필요해


부모와 자녀 등 가족에게 장애나 질병이 생기면 치료비나 간병비 등의 경제적 비용을 가장 큰 부담으로 느낀다. 가족 간병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1+2순위 합산)으로 70%가 생활비, 병원비, 간병비 등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이어 정부·지자체가 운영하는 전문 요양시설 확대(41%),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 확대(28%), 요양보호사 연계된 재가보호서비스 지원 확대(26%), 유급 간병휴직 제도(25%), 간병 가족의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6%)이 그 뒤를 이었다.

근로자가 일을 병행하면서 가정 내에서 아픈 가족을 잘 돌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일과 간병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한국에도 ‘가족돌봄휴가·휴직’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연 90일을 초과하여 사용할 수 없고 무급이 원칙이다. 가족돌봄휴가·휴직제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15%에 불과하고 ‘이름만 들어본 적 있다’는 58%, ‘전혀 모른다’는 응답도 26%이다. 이 중 실제로 한 번이라도 이 제도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5%뿐이었다.

가족돌봄휴직·휴가제도 규정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10명 중 7명 이상(74%)이 현재 무급인 가족돌봄휴직·휴가를 유급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최대 사용 가능한 기간(연간 90일)에 대해서도 충분하다는 의견은 26%에 불과했다.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간병 돌봄 문제는 이제 모든 가정이 겪을 수 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미디어를 통해 들리는 간병파산, 간병살인 등의 안타까운 상황은 우리나라의 간병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제는 간병이나 돌봄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의 고민을 깊이 할 시점인 것 같다.


송한나 한국리서치 수석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