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2법 3년 그 후]
임대차2법 포함된 계약갱신해지권
역전세에 세입자 너도나도 권리 행사
"일방적 갱신 해지 불가" 판결에 혼선
김모씨는 지난달 자신의 서울 목동 아파트 세입자에게서 전세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증명 문서를 받았다. '계약갱신권을 쓴 경우 세입자는 언제든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거론하며 '3개월 안에 전세금 6억 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기한 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법원에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김씨는 그날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입자가 2년 더 살 거라 생각하고 김씨도 전셋집을 새로 옮겼는데, 전세 재계약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라 당장 전세금 반환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법이 2년 더 살 권리만 보장하는 줄 알았지 세입자에게 조건 없는 갱신해지권까지 부여하는지 처음 알았다"며 "나 역시 집주인이면서 세입자인데 이렇게 계약 내용을 한 번에 허무는 게 과연 합당한 법인가"라고 토로했다.
세입자 주거 안정 취지의 '임대차 2법(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이달 말 시행 3년을 맞는다. 하지만 애매한 법 조항 탓에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다 보니 시장에선 '소송 촉발법'이란 뒷말이 나올 만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두 달 만에 태어난 임대차 2법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5명은 2020년 6월 계약갱신청구권이 골자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세입자의 '계속 거주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5개 개정안과 정부안을 통합·조정해 대안을 마련했고, 이 대안이 한 달 뒤인 2020년 7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2법이다. 법안 발의부터 국회 통과까지 채 두 달이 안 걸린 셈이다.
임대차 2법은 세입자가 원하면 전·월세 계약을 1회 연장해 최대 4년 거주를 보장하는 ①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승률을 5%로 제한하는 ②전월세상한제가 핵심이다. 법 취지는 훌륭하다 쳐도 세밀한 법안 검토 없이 긴급하게 시행하다 보니 법적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법 조항이 애매하다 보니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끝내 법적 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법원 판결도 제각각이라 시장 혼선이 더 커지고 있다.
논란의 계약갱신해지권 6조의3의 4항
최근엔 김씨 사례처럼 '계약갱신해지권'을 둘러싼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 이 역시 애매한 법 조항이 사태를 키운 측면이 크다.
민주당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6조의 3'을 신설했다. 세입자가 원하면 집주인은 반드시 계약갱신 청구를 받아들이되 이를 거절할 수 있는 9가지 예외를 열거한 조항(1항)과 집주인이 거짓으로 갱신 청구를 거절해 발생한 세입자 손해를 배상하도록(5항) 한 내용 등이 담겼다. 처음 법이 시행됐을 때만 해도 1항과 5항이 주목받았지만, 최근 전셋값이 폭락하면서 계약갱신해지권을 보장하는 '6조의 3의 4항'이 부각하고 있다.
4항엔 '1항에 따라 갱신(계약갱신청구권)되는 임대차의 해지에 관해서는 6조의 2를 준용한다'고 돼 있다. 6조의 2는 2009년 5월 개정된 조문으로, 임대차 계약이 끝난 뒤 서로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 계약이 연장된 묵시적 갱신의 경우 세입자가 언제든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고 해지 효과는 3개월 뒤부터 발생한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신규로 전세 계약을 체결하거나 서로 합의하에 전세 계약을 갱신한 경우엔 세입자의 일방적인 중도 해지가 불가하지만, 묵시적 갱신 땐 세입자의 중도 해지를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임대차 2법 신설 과정에서 6조의 3의 4항이 추가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에겐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선택권(옵션)이 부여된 셈이다. 세입자는 추가로 늘어난 계약기간 2년을 전부 채우지 않고 중간에 언제든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집주인은 3개월 안에 전세금을 내줘야 한다는 뜻이다.
갑자기 전세금 돌려달라… 집주인 초비상
임대차 2법 도입 후 전셋값이 가파르게 뛸 때만 해도 계약갱신청구권에 관심이 쏠렸지만, 지난해 말부터 전셋값이 폭락한 뒤엔 계약갱신해지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세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일단 전세 계약을 2년 연장한 뒤 주변에 더 싼 전셋집이 나오면 바로 해지권을 활용해 갈아타는 식이다.
집주인들은 초비상이다. 임대차 2법 도입 당시만 해도 '계약갱신해지권'은 거의 언급되지 않아 이런 옵션 자체를 몰랐다는 이가 많다. 더구나 요즘은 전셋값 폭락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기존 전셋값이 신규 전셋값을 밑도는 역전세난이 심하다. 계약갱신 뒤 계약을 2년 연장했는데 갑자기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집주인으로선 물리적으로 3개월 안에 세입자 구하기가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부동산 커뮤니티엔 "이럴 거면 2년 계약 연장 뒤 계약서를 왜 쓰나", "집주인을 범죄자로 모는 법" 등 집주인들의 불만 글이 수두룩하다.
법원은 제동… 국회는 검토 없이 '갱신해지권' 추가
문제는 실제 법원 해석은 또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6조의 3의 4항'을 근거로 계약갱신 해지가 가능하다며 세입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낸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예상을 깨고 집주인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4항이 준용하는 6조의 2의 취지가 "임대차가 별도의 기간을 정함이 없이 갱신된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세입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차 2법을 근거로 한 일방적 갱신 해지 사용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용우 변호사는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직접 갱신을 요구하는 것인데 법 개정 때 왜 묵시적 갱신 해지 조항을 준용하게 한지 의문이다"며 "6조의 3의 4항은 갱신 계약에 적용되는 걸로 해석되기 때문에 만약 세입자가 항소한다면 또 뒤집힐 여지도 있다"고 했다.
법 개정 당시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가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당시 법안 검토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계약갱신해지권을 담은 6조의 3의 4항에 대한 검토의견은 한 줄도 달려 있지 않았다. 결국 전셋값 상승에 따른 세입자 보호만을 염두에 두고 법 개정을 밀어붙였다가 전셋값 하락기에 전혀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추후 전셋값 급등기엔 집주인이 이런 리스크까지 반영해 전셋값을 높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법 조항 자체가 애매해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정부 산하)에 계약 갱신을 둘러싼 분쟁이 801건 접수됐는데, 이 중 조정이 성립된 건 23%인 190건에 그쳤다. 조정이 실패하면 대부분 피해 회복을 위해 소송으로 넘어간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6조의 3의 4항을 근거로 계약 갱신 해지가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가 하루에도 100통 넘게 온다"며 "법률상 가능하지만 법원 판단도 그렇다고 100% 장담할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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