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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때리고 바다에 빠뜨린 남편… '완전범죄' 잡아낸 젊은 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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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내 때리고 바다에 빠뜨린 남편… '완전범죄' 잡아낸 젊은 검사들

입력
2023.07.17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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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경찰에선 '무혐의'… 암장될 뻔
이경문·최진석 검사가 추가수사 후 기소
직접 공판까지 참여해 법정구속 이끌어

삽화=신동준 기자

삽화=신동준 기자


"아내가 자꾸 노름을 해서 다툼이 있었어요. 그러다 아내가 교자상으로 자해를 하더라고요. 자다 일어나 보니 아내는 사라졌고, 혼자 바다에 빠졌거나 실족한 것 같습니다."

2018년 2월 6일 오전 10시, 경북 포항시 한 방파제 부근에 50대 여성의 변사체가 떠올랐다. 가족의 실종신고로 수색이 시작된 지 열흘 정도 지난 무렵이었다. 실종 당일 부부가 싸우는 것을 봤다는 이웃 증언에 따라, 여성의 남편인 60대 A씨가 폭행으로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러나 경찰은 A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잡지 못했고, 이듬해 1월 A씨를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렇게 '완전범죄'가 되나 싶던 '50대 여성 변사체 사건'은 5년이 지나 사필귀정의 결말을 맞이했다. 법원이 이달 11일 A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이다. 아내를 때리고 바다에 빠트려 사망케 한 혐의(상해치사, 특수상해, 폭행) 등이 받아들여졌다. 새까맣게 묻힌 채 넘어갈 뻔했던 이 사건이 인과응보의 결말로 이어진 데엔, 이경문(35)·최진석(34) 두 젊은 검사의 끈질긴 추적이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남편뿐

경북 포항시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찰이 수색 작업을 벌이는 모습. 기사와는 관계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포항시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찰이 수색 작업을 벌이는 모습. 기사와는 관계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2월, 대구지검 포항지청 형사1부에 발령받아 사건 기록을 살펴보던 이경문 검사는 A씨의 해명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바다에서 떠오른 변사체는 목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투신으로 다쳤다고 보긴 어려웠고, 살아서 목뼈가 부러졌다면 도저히 자기 힘으로 바다까지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가 아내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전에 딸을 시켜 보험회사에 아내인 것처럼 연락하도록 했다는 점도 이상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아내가 운영하던 술집의 화재보험 해지환급금을 받아냈다.

경찰은 검찰 보완수사 지시를 거쳐 A씨가 2017년 아내를 폭행하고 상해를 가했다는 혐의까지 일단 찾아낸 상황이었다. 이마저도 이웃들의 진술로 겨우 적용된 혐의였다. 흉기로 추정되는 교자상도 A씨가 땔감으로 태워버려 이미 없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남편뿐. 폭행 사건을 사망(치사)으로 끌고 가기엔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이 검사는 진실 규명을 위해 동료 최진석 검사와 의기투합했다.

차량 블랙박스에 담긴 혼잣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실마리는 한 달 뒤 복원된 A씨 차량 블랙박스에서 잡혔다. A씨가 아내와 다툰 2018년 1월 26일, 아내는 오후 11시쯤 112에 "폭행을 당한다"는 신고를 했다가 남편의 저지로 취소했다. 그 사건 몇 시간 후인 27일 새벽, A씨의 혼잣말이 블랙박스에 녹음됐다. "미치겠다, 큰일 났네. 처벌을 받더라도 이건 됐고. 여기가 째졌던 건가,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드네." A씨가 아내의 죽음과 형사처벌을 예감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법의학자와 감정인 3명에게 추가 의뢰한 사인 정밀 분석도 힘을 실어줬다.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목이 부러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생전에 이런 손상을 입었다면 피해자가 스스로 움직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시신 손목 등에서 발견된 다른 상흔들도 누군가가 피해자를 교자상으로 때려 목뼈를 부러뜨린 뒤 팔을 움켜쥐고 바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걸로 추측됐다. 그렇게 A씨에게 상해치사 등 혐의가 추가됐다.

참고인 10여 명을 전면 재조사하고, 대검 심리분석관 투입을 요청해 A씨에 대한 통합심리분석도 시작했다. 그 결과 아내가 사라졌는데도 적극적으로 찾지 않던 A씨가 이웃과 식사 중 갑자기 식당을 나가 "선착장에서 아내 신발이 발견됐다"며 피해자 신발을 가져오는 등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두 검사는 A씨를 기소했고,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징역 6년에 법정구속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두 검사는 재판도 직접 챙기면서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결국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합의1부(부장 주경태)는 11일 A씨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35년간 함께 살던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 이를 은폐하려 바다에 던져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1심에서 A씨는 법정구속됐지만, 두 검사는 형이 가볍다 보고 항소할 예정이다. 이 검사는 "시일이 상당히 많이 흐른 상황이었기에 수사와 혐의 입증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피해자의 죽음에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명확히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수사 기법을 활용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며 "남은 재판까지 적극 신경 써 실체적 진실 발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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