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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놀아나는 "망할 놈의 세관원"으로서

입력
2023.07.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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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 로버트 번스의 “자유와 위스키”- 2

넷플릭스의 스코틀랜드 시대극 '아웃랜더'의 홍보 포스터. netflix.com

넷플릭스의 스코틀랜드 시대극 '아웃랜더'의 홍보 포스터. netflix.com

가난한 소작농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로버트 번스는 어려서부터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제 주인공인 13세기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를 추앙했다고 한다. 글을 익힌 뒤부터 그는 국가 권력이 강제하는 신분 질서가 자유·평등의 천부인권을 억압하는 현실, 군주제와 엘리트주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그어진 차별의 장벽에 거친 반감을 품게 되었다.

성년이 된 뒤로도 현실은 늘 부당하고 막막했다. 글로 배운 이상과 비루한 현실의 괴리를 메울 길은 월리스와 자코바이트들이 선택했던 무력의 길 외에는 없어 보였지만 그가 지닌 건 글뿐이었다. 그는 몸을 상해가며 위스키에 탐닉했고, 여성들과도 어지러운 관계를 맺었다. 먼 대륙에서는 프랑스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한때 그는 이민을 꿈꾸기도 했다.

지인들의 주선으로 번스가 얻은 직업은 세무원이었다. 위스키 고율관세 징세가 바로 그의 주요 업무였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그 일을 하는 자신을 혐오했다. ‘간절한 외침과 기도’에 등장시킨, 악마들과 놀아나는 ‘망할 놈의 세관원들(damned excisemen)'이 곧 그 자신이었다.

그에게 위스키와 자유는 현실에서나 시에서나, 스코틀랜드(인)의 생존과 존엄의 상징이었다. 그는 주세법과 양조장 면허법의 잇단 개정에 분노해 잉글랜드 총리에게 가명으로 공개서한까지 쓰기도 했고 시 필화사건으로 직장에서 쫓겨날 지경에 몰리기도 했지만 역시 지인들의 변호 덕에 실업을 면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대형 양조장 다수는 실제로 도산했다.

자코바이트 반란 전후의 스코틀랜드 역사를 다룬 타임슬립 영국 드라마 ‘아웃랜더(Outlander)’의 5번째 시즌 세 번째 에피소드의 원제가 ‘자유와 위스키(Freedom & Whisky)’였다. 한국 넷플릭스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도 번역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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