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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이 공가? 주말에 받아" 이런 회사 어떡하죠

입력
2023.07.20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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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가 주는 회사도 있지만 주말·연차 강요도 다수
10명 중 3명은 유급휴가, 공가 대신 '자기 부담'
고용부 "검진은 사업주 의무... 부당 지시 거부 가능"
과태료→벌금 강화, 유급휴가 규정 신설 등 필요

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건강검진, 연차냐 공가냐.'

직장인 A씨에게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고민이다. 사무직이 아닌 A씨는 입사 후 쭉 1년에 한 번 회사가 지정한 동일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다. 올해 건강검진에서도 '언제'와 '어디서'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다. 이전까지는 평일 근무시간에 따로 휴가를 쓰지 않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지만, 최근 다른 부서에서 "건강검진은 반차를 쓰고 가라"는 부장의 엄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차나 연차를 내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괜한 눈치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건 아닌지 신경 쓰였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박모(33)씨에게는 이런 고민도 사치다. 건강과 관련된 직장인 만큼 소속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기에 친화적인 환경일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다. 박씨는 건강검진으로 유급휴가를 받거나 근무시간에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박씨는 "여태까지 연차를 쓰거나 주말을 활용해 건강검진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다른 회사에서는 연차를 주거나 출장검진 차량을 회사로 오게 하는지 처음 알았다"며 "부럽다. 나도 편하게 건강검진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은 사업주 의무… '어떻게'는 모호

직장인들이 건강검진을 어떻게 다녀올지 고민스러운 이유는 법적 기준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 제정될 때부터 '사업주는 정기적으로 근로자에 대한 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는 조항을 뒀고, 지금도 '사업주는 상시 사용하는 근로자의 건강관리를 위하여 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에는 근로자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휴가 부여 방식이 규정돼 있지 않다. 산안법 시행규칙은 '사무직은 2년에 1회 이상, 그 밖의 노동자는 1년에 1번'이라는 진단 횟수와 함께, 사업주가 '일반건강진단 실시 시기를 안전보건관리규정 또는 취업규칙에 규정하는 등 일반건강진단이 정기적으로 실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뿐이다.

건강검진을 '무급 혹은 유급휴가 처리하는 게 맞는지,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게 맞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답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캡처

건강검진을 '무급 혹은 유급휴가 처리하는 게 맞는지,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게 맞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답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캡처

이렇다 보니 "건강검진은 무급휴가냐 유급휴가냐" "공가를 쓰면 되나 연차를 써야 하나"는 질문에 고용노동부는 "소요되는 시간을 유급으로 할 것인지 여부에 법령상 별도로 정한 바는 없다"고 답변한다. "단체 협약, 취업규칙, 회사 내규 등에 노사 합의를 통해 건강진단을 위한 공가 및 유급휴가 적용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을 경우 이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다만 고용부는 사업주가 주말이나 퇴근 이후에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하거나 연차 사용을 강제하는 건 법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노동자가 이를 따르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업주가 휴일에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고 질의하자 고용부 관계자는 "건강검진은 사업주 의무이기 때문에 부당한 지시는 근로자 본인이 거부할 수 있다"며 "그에 따라서 건강검진을 안 하게 되면 사업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답했다.

같은 취지의 규정은 근로기준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어야 하며 사용을 강제하면 안 된다. 사용자는 연차 사용 촉진 제도를 통해야만 휴가 사용 시기를 정해서 통보할 수 있다.

'주말 검진' 거부할 수 있다지만… "나라가 공가 보장해야"

그러나 부당하다고 해서 노동자가 사업주 지시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33)씨는 "회사는 건강검진을 쉬는 날이나 주말에 받으라고 한다"고 했다. 이씨는 "직장 생활하면서 언제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심지어 병원들도 예약제로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있어 시간을 맞춰서 연차를 쓸 수밖에 없는 점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씨는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검진인 만큼 의무적으로 공가를 보장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규모가 작거나 노동자 권리가 잘 보장되지 않는 직장이라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2019년 나온 '근로자의 건강검진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 2,5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최근 2년 건강검진 참여율은 79.3%였다. 5명 중 1명은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셈이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최근 2년간 건강검진 참여율은 97.7%였다. 사업장 규모별 건강검진 수검률에 대한 고용부 차원의 통계는 따로 없다.

건강검진을 받는 직장인도 10명 중 3명꼴로 회사로부터 별도의 검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휴일을 이용해 검진을 받았다는 이들은 21.4%였고, 검진을 위해 연차휴가를 사용했다는 이들은 8.8%였다. 무급휴가를 부여받았다는 이들은 4.4%였다. 근무시간 중 검진기관 방문(28.9%), 출장검진 이용(17%), 유급휴가 부여(16.2%) 등 회사가 검진 시간을 보장한 경우는 62.1%였다.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직장인은 그 이유로 '검진을 실시하는지 몰랐다'(25.1%) '업무 시간이 부족하다'(21.6%) '사업주가 시켜주지 않는다'(18%) 등을 꼽았다. 사업자로부터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안내조차 받지 못한 사례도 상당한 셈이다.

"사업주 책임 구체화할 필요"

건강검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건강검진 소요시간에 대한 법적 규정을 두고 사업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 중 보건관리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그룹인터뷰(FGI)에선 "사업주 입장에서는 과태료가 부과되더라도 근로자들이 검진을 받으러 가느라 발생하는 손실보다는 적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구진은 "건강진단은 업무상 질병 등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근로자의 노동력을 사용하여 이익을 향유하는 사업주가 검진을 제공해야 할 의무 주체이고 검진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부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며 △건강검진을 위한 유급휴가 도입 △업무 대체가 어려운 사업장은 휴일 검진에 대한 금전 보상 규정 도입 △사업주의 건강검진 의무 위반 시 과태료 대신 벌금 부과 등을 제안했다. 현재는 건강검진 미실시 노동자 1명당 1회 10만 원, 2회 20만 원, 3회 3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는 "건강검진이 사업주의 의무사항으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내용이 법에 명확하게 안 들어가서 근무시간 외에 하거나 주말이나 휴가를 써서 하는 것을 불법으로 판단할 근거가 미약해진 것"이라며 "노동자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하려면 법은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해석의 공백이 생기면 결국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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