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300억 원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 판정에 불복하기로 했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한 국민연금(공공기관)은 ISDS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데도, 중재판정부가 법리를 오해했다는 게 그 이유다. 배상액 산정 과정에서 명백한 계산 오류가 있었다는 점도 불복 사유다.
법무부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ISDS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직접 브리핑에 나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한국 정부가 소수주주 중 한 명에 불과한 엘리엇에 돈을 물어줄 사안이 아니다"며 "세계적으로 봐도 공공기관 의결권 행사에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사건은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을 정부로 볼 수 있나?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엘리엇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은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1%(이하 발행주식 총수 기준)를 보유하고 있던 1대 주주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고, 총 58.91%의 찬성률로 합병이 결정됐다. 반대표를 던졌던 엘리엇(지분 7.12%)은 "정부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며 ISDS에 중재를 신청했다.
여기서 문제는 공공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을 '정부'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 재판 과정에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자, 이 재판 결과가 엘리엇에 유리한 증거가 됐다.
결국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한국 정부가 5,358만6,931달러(약 69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국민연금이 '사실상 국가기관'이었고, 그 행위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최소기준대우의무(공정·공평하고 국제관습법에 맞게 외국인을 대우해줘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부 "한미FTA 잘못 해석"
이에 대해 정부는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하며 "국민연금은 여러 주주 중 하나일 뿐이어서 ISDS 판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웠다. ISDS 제도는 '투자자와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다. 투자자(주주)와 투자자 간의 다툼은 판정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중재판정부가 한미FTA 조항을 잘못 해석했다"고도 지적했다. 정부가 최소기준대우의무를 어겼다고 한다면, 정부의 '공식적인 (차별)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선 정부의 정상적인 조치가 아닌 특정 공직자(문형표)의 일탈 행위만 있었다는 것이다.
중재재판부가 말한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표현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한 장관은 "한미FTA에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은 없다"며 "FTA 조문에서 정하지 않은 개념을 중재재판부가 인위적으로 도입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정부는 중재판정부가 판정한 배상액 1,300억 원에 명백한 계산 오류가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해석·정정도 신청했다. 삼성물산이 합병 이후 엘리엇에 지급한 합의금을 '세전 금액'으로 공제해야 하는데 '세후 금액'으로 공제해 배상금이 약 60억 원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손해배상금의 이자를 원화로 지급할지, 달러로 지급할지에 대해서도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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