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중 호우 피해 복구와 관련해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을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추경을 통해 복구 예산을 마련할 것을 주장하자, 이를 사실상 거부하며 내놓은 대안이다.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나랏빚을 늘려야 할 추경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길이다. 이보다는 낭비되는 예산을 최소화해 이를 복구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이 책임감 있는 자세다.
□ 문제는 과연 ‘카르텔 배를 불리는 보조금 폐지’로 수해 복구 비용을 얼마나 충당할 수 있느냐이다. 우선 노동단체 지원금의 경우 지난해 36억 원에서 올해 8억 원대로 축소해 이미 많이 줄었다. 민간단체보조금도 정부가 지난 3년간 지급내용을 전수 조사한 결과 1조1,000억 원 가운데 부정사용이 확인된 것은 314억 원이다. 과거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한 추경 규모가 2조~4조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정부 보조금 전부를 복구비용으로 전용한다 해도 턱도 없이 부족하다.
□ 눈을 국고 보조금에서 돌려 넓게 본다면, 엄청난 이권 카르텔을 사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연간 7조7,000억 원(2021년 기준)에 달하는 법률시장이 대표적이다. 최근 9년간 2배 이상 커질 만큼 고속 성장 중인 이 시장의 40%를 6대 로펌이 차지하고 있다. 대형 로펌은 전직 고위직 판ㆍ검사와 끈끈하게 연결돼 있어 시장 점유율보다 훨씬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권영준 신임 대법관은 법학 교수 시절 대형 로펌에 5년간 법률의견서 수십 건을 써준 대가로 18억 원을 받았다.
□ 반면 판ㆍ검사나 대형 로펌 등에 들어가지 못한 대다수 변호사는 의뢰인을 만나기조차 힘들다. 이런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찾기 위해 법률서비스 플랫폼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변호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변호사협회가 징계를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변협이 다수 변호사가 아니라 이권 카르텔 보호에 나선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부가 이런 이권 카르텔들을 해체하고 그 부당 이익까지 추징한다면, 정부 예산도 아낄 뿐만 아니라 국민도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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