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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를 포기하냐" 다그칠 바엔... 차라리 '무책임한 생부'에게 양육비 거두자

입력
2023.07.26 04:30
수정
2023.08.12 17:4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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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놓친 아기들: ③놓치는 아기들 없으려면]
본보, 현장 전문가 4인 초청 좌담회 개최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중국 한국일보사에서 열린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중국 한국일보사에서 열린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사실 저도 임신했을 때 돈이 하나도 없어 도저히 아이 키울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입양을 고민했지요. 하지만 주위에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고 마음을 바꿨어요.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미혼모 김지선(가명·35)씨는 세 살배기 아들 얼굴을 보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다. 3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는 지선씨 인생에 큰 선물이었지만, 혼자 키워야만 했기에 커다란 부담이기도 했다. 그래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올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차마 내 자식을 어디다 버릴 수 없단 생각에 끝까지 책임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아기는 사랑이지만 현실은 고통이었다. 임신에 따른 경력 단절과 육아 문제로 인해 지선씨는 현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출산 전과 비교해 수입은 반토막. 은행 대출과 정부의 양육수당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비를 겨우 충당한다.

'나홀로 육아' 탓에 생존 한계선상에 몰린 미혼모는 지선씨뿐만이 아니다. 한국일보가 '세상이 높친 아기들' 기획을 위해 51명의 미혼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2.7%(32명)가 "출산 후 아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든 적 있다"고 답했다.

출생 미신고 영아의 잇단 유기·살해 사건이 드러나며 정부가 관련 제도 손질에 나섰지만, '영아 보호'라는 1차 목표에만 집착하느라 출산부터 양육까지 혼자 감내해야 하는 '위기임산부'에 대한 지원책은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생신고제나 영아살해 처벌 강화 등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위기 임산부에 대한 효과적 지원책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본보는 현장 전문가들을 초대해 어떤 지원책이 병행되어야 하는지를 들어봤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성민 HnL법률사무소 변호사,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이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머리를 맞댔다.


20일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20일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출생통보제(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감사원 조사 결과를 보면 영아 살해와 불법입양의 대부분은 출생통보제만 입법화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어요.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로 사건이 부각되긴 했지만, 영아 유기는 사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숙제입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요.

박성민='위기 임산부'는 자기 사정이 알려질까 두려워 숨기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죠. 하지만 현행법은 생모가 아기를 포기하면 영아유기죄로 처벌하는 것을 전제로 지원체계가 짜여져 있어요. 임산부가 지원시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신분이 노출·기록되고, 상담사가 '아이를 유기할 가능성' 을 발견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 그래서 처벌을 감수하고 도움을 요청할 바엔, 차라리 영아 유기를 선택하는 산모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거죠.

양승원=출생신고를 숨겨야 하는 미혼모는 상담과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위기 임산부를 돕고 있는 사회복지기관, 미혼모지원센터 등은 '출생신고 조건부 상담'이 전제돼 있습니다. 출생신고가 확인돼야 도움을 줄 수 있고, 출생신고가 안 된 경우 의무적으로 피상담자를 고발해야 하는 거죠.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미혼모 입장에선 아이를 유기하거나 불법입양 등의 선택지밖에는 남지 않아요.

김민정=미혼모가 임신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뭔 지 아세요? '이 아이를 낳아 내가 정말 잘 키울 수 있을까'하는 거죠.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기 때문에 이혼한 가정과는 출발선이 또 달라요. 100만 원씩 제공하는 임신바우처의 존재조차 모르는 미혼모들이 많거든요. 청소년을 포함한 대부분의 미혼모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나 저렴한 월세로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고 있죠.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미혼모를 지원하지도 않으면서 "왜 너희는 아이를 포기하나"고 비난하는 것이 가장 답답합니다.


20일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양승원 베이비박스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20일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양승원 베이비박스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경우에 따라선 익명으로 출산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어요. 불가피한 상황에선 부모의 선택을 존중해 아기의 생명을 지켜야 해요. 생명의 무게를 '알 권리'로 저울질해서는 안 됩니다.

양승원 베이비박스 사무국장

-보호출산제(익명으로 아이를 낳아 지자체에 인도)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거셉니다. 입양과 출산에서 미혼모의 '익명성'은 어디까지 보장돼야 할까요.

김민정=정작 미혼모 당사자들은 보호출산제 도입에 부정적이에요.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기 너무 쉬운 구조라서죠. 열 달 뱃속에 품은 아이를 쉽게 보낼 수 있는 부모는 없어요. 미혼모의 익명성을 지켜준다면 그 순간만큼은 지나갈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죽을 때까지 평생 가게 돼요. 지금 이 시간에도 엄마들은 작은 원룸에서 기저귀와 분유를 어떻게 사서 아이한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보호출산제를 급하게 도입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탄탄한 지원체계를 만들어 "미혼모 혼자서는 아이 못 키우니, 입양이 좋은 선택"이라는 시그널 대신 "당신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어"라는 신호를 줘야 해요.

노혜련=출생통보제조차 시행되지 않았는데 보호출산제를 거론하는 건 시기상조입니다. 보호출산제는 미혼모의 출산은 창피한 일이고 숨겨줘야 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줘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익명출산제, 독일에서는 신뢰출산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는 종교적·문화적 이유로 가족에게 '명예살해'를 당할 위험에 놓인 이민자를 위한 제도거든요. 국내에서 논의되는 보호출산제 또한 독일의 신뢰출산제와 근본적으로 달라요. 아동과 부모의 관계를 비밀로 하면, 자기 정체성을 알 권리를 박탈당한 입양인은 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요. 출산한 여성이 아이를 포기한 뒤 겪을 심적 고통과 트라우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박성민=산모의 익명성은 △출산 전 상담·지원 단계의 익명성 △출생신고 시 문서에 실명이 기재되지 않아 발생하는 제3자로부터의 익명성 △아기가 입양 및 시설보호를 통해 성장한 뒤 생모를 찾고자 할 때 익명성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중 보호출산제 반대 입장의 논거로 세 번째인 아이의 알 권리가 자주 거론됩니다. 프랑스 보호출산제는 생모의 익명성을 보장하지만, 독일은 아동이 16세가 된 이후 법원 판단 등에 따라 익명성 보장 여부가 달라져요. 그래서 프랑스엔 베이비박스가 없지만 독일에는 베이비박스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겁니다. 독일 제도가 합리적인 면이 있지만, 베이비박스를 선택하는 산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죠.

20일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박성민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20일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미등록영아 및 미혼모 보호를 위한 대안 좌담회'에서 박성민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미등록 영아 문제에서 우리가 계속 놓치고 있는 게 뭔지 아시나요? 바로 아기 아버지의 책임이에요.

박성민 변호사

-홀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미혼모에게 어떤 제도와 지원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박성민=생부는 이 문제의 주요한 당사자입니다. 하지만 아기를 낳은 생모, 익명성이 보장되는 생부 사이엔 큰 불평등이 존재하죠. 미혼모가 원한다면 생부를 인지(자신의 친생자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해 아기의 법률상 아버지로 인정받은 후 양육비 지급 등을 책임지도록 해야 합니다. 인지 및 양육비 지급 청구 등의 절차는 매우 까다롭거든요. 그래서 제도적으로 국가가 지원 혹은 대리하는 형태로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생부가 끝까지 모른 체하면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미혼모와 아기 중심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김민정=국민행복카드 외에 임신 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없어요. 아이가 아동을 지나 청소년이 되면 정부 지원도 끊기죠. 양육 지원도 중위소득 60% 이하로 높아요. 일을 해서 자립하려 하면 지원이 끊기는 거죠. 심리치료 지원도 없어요. 임산부 지원, 양육수당, 기초생활수급제도 등 미혼모들이 누릴 수 있는 지원은 다른 임산부도 혜택 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입니다. 열악한 환경의 미혼모만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은 전무해요. 임신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의료 지원을 시작으로 출산 이후 육아지원 등 '선 행정'을 통해 공백 없이 모든 지원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양승원=위기임산부를 위해 임신부터 출산까지 원스톱으로 '선지원 후행정' 복지가 이뤄져야 합니다. 현재는 미혼모가 집에서 출산해 핏덩이가 된 아기를 안고 주민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행정 절차를 거쳐 최대 1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심리적으로 위축된 엄마들에게 행정 안내에만 그치는 일도 많죠. 나이가 어린 위기임산부에 대한 대책도 중요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한 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양육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해요.

노혜련=지역사회가 위기임산부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 집중적으로 상담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홀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립돼 있고 정보와 지원체계가 부족하죠. 임신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상담해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양육이 어려운 경우 충분히 상담한 후 본인과 아동을 위한 최선의 결정(입양)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입양 이후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사후관리체계도 필수죠.


이승엽 기자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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