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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참사와 방관자들

입력
2023.07.20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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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 무책임은 이 시대 관료 행태인가
누구 한 사람 제대로 역할 한 사람 없어
대통령도 내치 집중 않으면 외교성과 묻혀

이범석 청주시장이 20일 충북도청에 마련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범석 청주시장이 20일 충북도청에 마련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송 참사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하다. 참사 자체도 어처구니없거니와 막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충분했던 점에서 후진적 인재이자 관재였다. 공직자 누구 한 사람, 국가기관 어느 한 곳만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비극적이다. 멀쩡해 보이는 대한민국호(號)의 속이 이렇다면 침몰하는 배와 다를 바 없다. 오송 참사가 이태원 참사와 다르지 않게 연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송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시장이나 도지사가 임명 직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며 비극 원인을 짚었다. 지자체장이 임명 직이었다면 다음 보직을 위해서라도 재난 대응 강도가 높았을 것이고, 책임 있게 조치도 했을 것이란 근거는 없다. 하지만 결과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마저 "국민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집중호우 때 사무실에만 앉아 있지 말라"고 한 발언은, 그런 답답함의 표현일 것이다.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키고도 언제까지 민주주의 실험대라고 할지 모를 일이다.

오송 사건이 더 참담한 것은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들이 반복된 점이다. 중앙기관과 지자체 따질 것 없이 참사 원인을 찾을수록 그것이 법, 매뉴얼보다 이를 실행하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지자체와 기관들이 책임을 서로에게 넘기고, 공직자들은 부적절한 처신에도 거꾸로 고개 들고 있는 것 또한 매한가지다. 참사 현장의 장관 옆에서 웃는 고위직이나 “내가 달려갔어도 달라질 게 없었다”는 지사의 발언은 이번 참사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잔인하게 드러냈다.

공직사회 무책임이 이 시대 행태이기는 하나 권한만 누리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어서 배에서 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송에 앞서 공직 전반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이태원 참사의 감사는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감사원이 재난안전체계 감사를 제때 나서 반면교사로 삼을 엄정함을 보였다면 오송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높았다면 공직자와 기관들의 대처도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일 때 공직자들마저 움직이지 않았다. 비판부터 하고 보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책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그 실패는 담당자 몫이 된다. 그래서 책임질 일은 차일피일 미루며 복지부동하는 것이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차관으로 내리꽂은 ‘차관정치’도 이런 분위기 쇄신을 겨냥한 것이겠으나 결국 오송 참사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과거 대통령들의 고백이 아니라도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최종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번 폭우 사태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해외 순방 중이던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어도 상황을 못 바꾼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그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공직사회와 국민 여론을 이해한다면 이는 보다 큰 진실을 외면한 발언이다. 많은 이들은 대통령에겐 외교보다 내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5월 도쿄 G7정상회담 중 홍수 피해가 났다며 조기 귀국한 것도 그런 사례다.

우리는 안보와 경제 외교가 내정과 맞물려 있어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전 대통령들이 어려운 내치보다 외교 성과로 높은 지지율을 누렸던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차례 만난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이런 문제에 대한 안목을 보여준 바 있다. 부시 부자(父子)의 백악관에서 외교문제를 다뤘던 그는 외교는 국내에서 시작해야 하며, 가장 큰 안보와 번영의 위협은 내부에서 온다고 했다. 국내 상황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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