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여름 남부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 당시 많은 농장동물이 죽었다. 축사에 차오르는 물을 피하지 못한 소와 돼지는 목숨을 잃었고, 겨우 벗어나 급류에 휩쓸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살길을 찾던 소들은 지붕을 딛고 구조를 기다리거나, 산속 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결국엔 잡아먹히기 위해 길러진 동물도 사람과 같이 그저 살고 싶어 하는 생명임을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킨 계기였다.
올해도 집중호우로 인한 농장동물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83만 마리가 급류에 휩쓸리거나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최근 5년간 가장 큰 피해다. 닭이 76만 마리가 넘어 가장 많았고, 오리 5만여 마리, 돼지 4,300마리, 소 400마리 등으로 파악됐다.
물 속에서 목만 간신히 내놓고 있는 돼지, 다리까지 물이 찬 축사에 서 있는 소들을 보니 안타까웠다. 이후 다행히 충남 공주시 이인면에서는 산속 여기저기로 피신했던 소 500마리가 닷새 만에 돌아왔고, 경북 안동시에서는 경찰관의 기지로 이동 동선을 확보해 소 40마리가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경북 예천군에서는 집중호우로 실종됐던 개 '진순이'가 27시간 만에 무사 귀환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앞으로 이 같은 자연재해는 반복될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농장동물의 피해도 계속될 텐데 이를 막을 수는 없는 걸까. 2019년 강원 고성군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을 계기로, 반려동물에 대한 재난대책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반려동물의 재난대책 지원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는 등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지만 관련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농장동물은 상황이 다르다. 농장동물은 농장주의 재산이며, 경제적 가치로 평가받는다. 이런 점에서 반려동물과 출발선이 다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소, 돼지와 닭을 수십, 수백 마리나 어딘가로 대피시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다만 농장동물 대피와 관련해 아예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상시 이동 계획을 세우고, 사료와 물 등 응급 키트를 준비하라는 내용이다.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와 미 워싱턴대는 탈출 경로를 미리 계획하고, 홍수가 난 뒤에는 동물을 되도록 높은 지대로 옮기고 비상식량과 깨끗한 물을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캐나다에서는 홍수로 인한 동물 피해가 커지자 지역 단체와 수의사가 적극적으로 돼지와 송아지를 치료한 사례도 있었다. 그들을 구조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난∙재해로 인한 농장동물 피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와는 접근법이 다르다.
재난∙재해 시 농장동물을 지키려면 결국 그 수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우스터 폴리테크닉 연구진은 재난 대책을 적용하기에는 농장동물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미 콜로라도 볼더대 레슬리 어바인 사회학과 교수도 "재난∙재해 시 농장동물을 위한 해결책은 구조가 아닌 공장식 축산의 관행을 바꾸는 데 있다"고 말한다. 3년 전 홍수 때 목숨은 건졌지만 '등외' 등급 고기로 팔려나간 소를 다시 보면서, 기르는 수를 줄이고 고기를 덜 먹는 데 답이 있다는 의견에 더 공감이 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