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법인 민법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가치와 근간을 이루는 개념과 제도를 담고 있다. 그런데 농경사회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민법이 초고도화된 한국 사회에 아직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매우 놀랄 것이다. 물론 법률이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일반적 개념을 사용해 현대의 변화된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법원이 해석론을 바탕으로 판결하는 데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학계에서 눈부시게 발전된 학문적 성과들을 민법이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최근의 민법개정은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스승님께서 민법개정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셨고 대학원생으로서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았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10년 전 민법개정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민법 개정위원으로 직접 참여하여 개정안을 논의하였으나, 성년후견제도 등 일부 내용만 실제 개정으로 이어졌다. 원래 계획하였던 전면적인 민법개정을 통한 민법의 현대화라는 목적은 달성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지난 7월 민법개정위원회를 법무부에서 새롭게 발족하였고 필자도 개정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사이 우리 민법의 모태가 되었던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연합 국가들 그리고 옆 나라인 일본과 중국 모두 민법의 현대화를 이뤘고 꾸준히 새로운 거래현상과 법이론의 발전에 따라 민법을 바꾸고 있다.
민법의 현대화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현대적 거래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경제현상을 반영한 전자상거래, 전자문서, 디지털 콘텐츠 계약, 플랫폼 계약 등의 내용이 담겨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거래에 관한 규정, 즉 소비자계약에 관한 규정도 담아야 한다. 우리 민법은 그 순수성을 지켜오면서 임대차보호법, 부동산실명법, 이자제한법 등 수많은 민사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별법에 있는 내용이 우리 거래생활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내용의 민법 편입 여부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법이 일반법의 특성을 반영하여 민법전을 통하여 국민의 일상생활이 법적으로 규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민법 개정은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독일 민법의 경우 민법은 사회가치의 반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미리 만들어진 민법을 기다렸다가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에 공포하였다. 우리나라 민법도 우리 사회의 근간을 규율하는 법으로 우리나라 법문화와 사회의 수준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된 지 몇 년 안 되어 전란 속에서 만들어낸 민법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발전 정도에 맞지 않는다. 현재 민법은 만주국에 적용하려고 하였던 법안을 주로 참조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문화 수준에서 근본적으로 국제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의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법의 통일화 작업이 이루어진 유럽연합의 성과, 국제기구 등에서 제정한 협약 내용 등을 반영한 선진적인 입법 내용을 본 개정이 담아 한국이 갖는 위상에 맞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번 민법 개정위원회와 개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법무부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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