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시민 불안... "남의 일 같지 않아"
"강력범 격리시켜 달라" 정부 대책 요구
유동 인구 급감, 번화가 상권 급속 침체
"가책 없어. 사이코패스 가능성" 분석도
“어쩌면 제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어요.”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김예빈(22)씨는 이틀 전 흉기난동 장소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헌화했다. 사건 현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산다는 김씨 얼굴엔 불안감이 역력했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나다니던 곳인데 비슷한 사건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소했다. 매일 강아지와 사건 장소를 산책했다는 주민 박수이(43)씨도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청년들이 안됐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 국적의 조모(33)씨는 21일 오후 2시쯤 이곳에서 마구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가 경찰에 밝힌 범행 이유는 황당했다. “내가 불행하니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것. 조씨는 이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면서도 “그냥 모든 게 예전부터 안 좋았다. 너무 힘들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날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황망한 죽음에 추모 줄 이어... 상권은 침체
피해자들이 조씨와 일면식도 없는 ‘묻지마 범행’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인지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발걸음은 종일 줄을 이었다. 신림역 4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엔 주말 동안 국화꽃 수십 송이가 쌓였다. 바로 옆 상가 벽면에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현장을 지나갔으면 분명 살렸을 텐데 옆에 없어 미안하다” 등의 추모 글귀가 가득 붙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쪼그려 앉아 조의를 표하는 추모객도 있었다. 중학생 아들과 추모 공간을 찾은 김정희(44)씨는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젊은 사람들이 변을 당해 가슴이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조씨의 폭력 범죄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은 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그는 폭력 등 전과 3범에 소년부 송치 기록도 14건이나 됐다. 사건 장소 인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강현아(20)씨는 “(피의자가) 전과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사람을 나라에서 감시할 방법은 없느냐”고 되물었다. 다섯 살 자녀와 함께 근처를 자주 오간다는 천모(38)씨도 “강력범죄자들을 아예 격리시키든지, 아니면 무슨 대책이라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인 일대 상권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해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유포되면서 추모객 외 유동 인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신림역 4번 출구 근처에서 타코야키를 파는 A씨는 “손님이 3분의 2는 줄었다. 15년 동안 장사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숨 쉬었다. 업종에 관계없이 대부분 상인들은 “지난 주말과 비교해 매출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범인은 사이코패스?... 경찰, 정신 감정하기로
전문가들은 조씨가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전날 사건 장소를 예고 없이 찾아 “사이코패스 등에 대한 관리ㆍ감독 방안을 더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 여유로운 범행 태도 등으로 미뤄 사이코패스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불행을 해소해야 하는 주체는 본인’임에도, 조씨가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등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점 역시 반사회적 행동 양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은 조만간 사이코패스검사(PCL-R) 등 조씨의 정신 감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2차 피해’가 가시화한 만큼 범행 영상을 유포ㆍ게시하는 행위도 수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 유포로 유족과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사처벌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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