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 아이언 라이더스의 전설- 2
아이언 라이더스의 대장정에는 의무병과 기자가 동행했고, 그들의 험한 여정은 신문을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됐다. 그들은 출발 직후 로키산맥의 6월 눈폭풍에 자전거를 이고 봉우리를 넘어야 했고, 네브래스카 사막의 폭염도 견뎌야 했다. 식수가 오염돼 일부가 치료를 받고 뒤늦게 합류한 적도 있었다. 급류의 개울도 건넜고, 타이어를 집어삼키는 진흙밭도 헤쳐 나아갔다. 병사 개개인이 휴대한 짐은 식량과 장비 등 약 36kg에 달했다. 당연히 오늘날의 MTB와는 현저히 다른, 육중한 철제 자전거였고, 18단 24단 기어 같은 건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동행한 기자는 장정 막바지인 7월 17일 자 기사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휴식이나 유희를 위해 지체하는 법 없이 페달을 밟았다”고 보도했다.
신문과 라디오 보도로 그들의 대장정 소식을 알게 된 시민들은 연도에 나와 환호하기도 했고, 참전군인회 등이 환영잔치를 베풀어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미주리주 일부 지역 주민들처럼 흑인 병사들의 야영조차 거부한 곳도 있었다.
그들은 자전거 수리 등을 위해 쉰 날을 빼고 34일 동안 하루 평균 90km씩, 총 3,058km를 이동했다. 자전거를 달린 거리보다 자전거를 이고 지고 이동한 거리가 더 긴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그들은 기병의 1/3 비용으로, 기병보다 약 2배 빨리 해당 거리를 주파했다.
세인트루이스시 주최 공식 환영행사 직후 백인 장교와 의무병은 호텔에서, 흑인 병사들은 자전거 창고에서 식사해야 했다.
제25보병연대와 아이언 라이더스는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에 가장 먼저 투입된 부대 중 하나였다. 1906년 텍사스주 브라운스빌 흑인 병사들과 백인 시민들 간의 총격전으로 여론의 과녁에 가장 먼저 세워진 것도 흑인 엘리트 부대원인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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