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중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정 불가
대법원 "허용하면 사실상 동성혼 인정"
법원 내부서도 "인권침해" 비판 목소리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 합의체)는 트랜스젠더 문제에서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성전환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여성)의 성별을 변경(남성→여성)할 수 있도록 한 사법 역사상 첫 번째 판례였다.
이 판결 이후 대법원은 후속 판례와 예규 변경 등을 통해 트랜스젠더 법적 성별정정의 문턱을 조금씩 낮춰 왔다. 지난해 11월 전원합의체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미혼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무조건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법원행정처는 '외부 성기'의 존재를 성별정정 참고사항으로 보는 규정을 손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첫 판결 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고하게 남아 있는 장애물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결혼 여부'다. 결혼해서 혼인신고를 한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성별을 바꿀 수 없다. 기혼자의 법적 성별정정을 허가해 준다면 사실상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혼인은 남녀 간의 육체·정서적 결합'이라는 판례를 고수하고 있다.
"성별 바꾸려면 이혼하라니"
이 법리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인권 침해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한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려면 결국 이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트랜스젠더인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실제 이 법리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 도중 갈라선 트랜스젠더가 적지 않다"며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된다'는 헌법 조항, 성적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나 일부 변호사만 이런 논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 내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끊이지 않는데, 신윤주 청주지법 영동지원장은 지난달 발표한 논문에서 "△이성 간 결혼으로 유지되던 가족공동체에서 성별이 정정되는 것(동성혼의 외관)과 △국가가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는 동성혼은 구별돼야 한다"라며 "실재하는 부부의 모습과 관계없이 성별정정 신청만으로 이혼을 강제하는 것이 혼인제도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성별정정 신청을 심리한 적이 있는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도 "배우자 동의 여부도 따지지 않고 성별 변경으로 배우자에게 미칠 법적·사회적 영향이 중대하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하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동성혼이 법제화되기 전에 기혼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인정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동성혼 법제화 9년 전인 2008년, 결혼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법 조항을 만장일치로 위헌이라 판단했다. 트랜스젠더가 새로운 성별을 인정받기 위해 이혼을 한다면, 그가 결혼생활과 똑같은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존엄성 침해로 봐야 한다는 게 독일 헌재의 결론이다. 대만도 동성혼 법제화 6년 전인 2013년 "이성혼으로 결합한 부부의 혼인을 해체할 근거가 없다"며 기혼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모욕적 언행 적지 않아... 태도 개선해야"
이와 별도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사건을 심리하는 법관들의 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술증명서를 제출했는데도 외부 성기를 촬영한 사진을 제출하도록 하거나 △제3자(법원 실무관)를 통해 성전환 수술 확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고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에게 성관계 여부를 묻는 등 모욕적 언행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성별정정 사건을 다수 수임한 적이 있는 장서연 공익인권법 재단 공감 변호사는 "(법원 차원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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