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오로지 주택만이 줄 수 있는 유니크한 정서를 좋아한 이정윤(31)·김정하(30) 부부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주택가의 삼각형 땅을 발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들만의 집에서 30대를 시작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집짓기'는 수십 년 뒤 막연한 로망이 아닌 당장 이뤄내야 하는 목표였다. 곧 태어날 아이와의 육아 라이프를 고려해 아내의 친정집 근처에 땅을 보러 다니던 부부는 광주 동구 지산동의 오래된 골목 끝자락에 남아 있는 자투리 땅을 발견했다. 삼각형 부지의 세 개 면 중 두 면은 도로에 접하고, 남향을 바라보는 면은 다른 주택에 가려진 좁은 땅이었다.
"저렴하게 나온 땅이었지만 면적이나 모양이 집짓기에 열악한 조건이라 설계가 중요했어요. 지역에서 이름난 건축가를 수소문하다 임태형 소장을 알게 됐고, 그간 작업을 보면서 확신했죠. 이분이라면 이런 땅에서도 꿈에 그리던 집을 실현해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임태형(플랜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 역시 이 땅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근처를 지나다 자투리 땅에 '매매' 표지판이 꽂힌 걸 보고 사진을 찍어 뒀어요. 저렴해도 주인을 찾지 못한 좁은 땅에서 주택의 가능성을 상상해 본 거죠. 그런데 딱 일주일 후에 부부가 이 땅에 집을 짓겠다고 온 거예요." 지난해 광주시 건축상 주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지산돌집'(대지면적 102.70㎡, 연면적 178.15㎡)의 구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도심과 자연, 그사이 집을 짓다
이 집의 인상과 분위기를 결정짓는 돌벽은 건축주의 아이디어였다. 단단한 자연석인 '파주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한 미술관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부부는 자신들의 집에도 파주석을 쌓아 외벽을 만들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는 건축가에게도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무등산국립공원과 광주 도심의 경계선에 있는 집의 위치와도 연결해 볼 법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부지가 자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이 돌벽과 상통하는 부분이었죠. 돌을 직접 깨고 정성스레 쌓아 올려 만든 벽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감성이 느껴지는데 거리에서 보면 그 자체가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풍경에 녹아듭니다."
돌벽은 건물 하단을 받치고 있는 형태라 별도의 담장 없이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만들며 심리적 안정을 주는 효과도 있다. 건축가는 단단한 돌벽에 무질서하게 창을 배치하고, 위로는 깨끗한 흰색 벽으로 디자인해 전체적인 인상을 가볍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임 소장은 "마치 자연의 부분인 듯한 신(scene)를 연출하면서도 거친 석재에서 오는 무게감을 덜어내며 주택의 분위기를 냈다"며 "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들이 이 집을 도심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이정표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내부를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한 것도 건축주의 요구사항이었다. "노출콘크리트 써서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살렸으면 한다"는 요구는 본래 성질을 드러낸 소재를 즐겨 쓰는 건축가 입장에선 반색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 임 소장은 "콘크리트는 가정집 내부 마감에 흔히 사용하지 않는 소재지만 외관의 미감을 이어가면서 간결하고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라며 "콘크리트에 더해 모든 가구를 진한 목재 소재로 제작해 외부 자연이 실내까지 이어진 듯한 분위기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건물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창문, 캐노피(덮개) 구조의 옥상도 자연을 끌어들이기 위한 건축적 노림수다. "아래층에선 프라이버시 확보에 주력했다면 3층 이후론 창과 야외 공간을 활용해 은행나무 가로수 풍경, 원경의 무등산을 끌여들였어요. 집이 자연과 도심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도, 집안 어느 곳에 있어도 자연과 연결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삼각형 땅에서 찾은 공간 해법
요식업을 운영하며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부부의 집이다 보니 기본적인 주거 기능에 따라 붙는 소소한 요구사항이 적지 않았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부부에게 정형화되지 않은 공간이 필요했다. 특히 남편 이씨가 실현하고 싶은 가장 큰 로망은 레시피 개발을 위한 실험을 하고, 지인들을 초대해 요리를 선보이기도 하는 놀이터 같은 부엌이었다.
임 소장은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지인들에게 편안하게 오픈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계획했다. 1층 현관에는 과감하게 남편의 아지트인 작은 부엌을 두고, 2층에는 메인 부엌과 다이닝룸, 거실과 실내 중정을 조성해 공간감을 키웠다. 3층엔 침실만 배치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계단으로 1층부터 4층까지 동선을 연결해 옥상과 취미공간을 선택적으로 개방도록 했다. "땅이 미관지구에 속해 가용 면적이 18평에 불과했고, 땅 모양이 삼각형 모양으로 버려지는 공간이 발생했기 때문에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했어요. 최대한 층고를 높이면서 계단을 반 층씩 올라가면 공간이 펼쳐지는 스킵플로어(skip floor) 구조를 적용해 공간을 알차게 쌓아 올렸죠."
방과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느슨하게 구획지은 것은 설계의 묘미.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져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처럼 느껴지는 계단을 각 실과 바로 연결하고, 복도와 세면·세탁 공간 등도 계단으로부터 이어지는 오픈 구조로 만들었다. 거실과 내부 정원 사이에는 개폐가 가능한 유리문을 설치했다. 사용 목적에 따라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스테이 같은 집에서 누리는 일상
건축가는 집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젊은 부부에게 편안한 동굴 같은 장소이기를 바랐다. "현관을 들어서면 동굴 속에 들어온 듯 고적하다가, 계단을 올라갈수록 점점 자연에 몰입되고, 옥상 캐노피에서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즐겼으면 해요."
그 의도대로 부부는 좋아하는 마감재와 가구, 소품으로 채우고, 라이프스타일에 맞춤하게 짜여진 공간을 누리며 하루하루 스테이에 머무르듯 살고 있다고 했다. 집이 지어진 해에 태어난 아들 시하(1)와 함께 정원이 들어온 거실에서 마음껏 게을러지고, 취미실에선 가족의 취미생활을, 힐링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옥상에서 자연을 경험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가족만의 유니버스에서 만끽하는 일상이란 이런 것. "다락방의 박공지붕처럼 사선으로 만든 천장이나 캐노피 형태의 옥상 테라스 등 외부에서 추측할 수 없지만 들어와 보면 평이한 구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재밌고 만족스러워요. 우리 생활과 취향에 완벽하게 맞춘 집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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