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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광복회장 “1948년 건국론 주장은 매국이나 다름없어…북한 흉내 내는 것”

입력
2023.08.02 18: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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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국가 정체성 바로 서야' 메시지 주문
대한민국 정체성은 기미년 3·1 독립선언에서 출발
백선엽 장군 '공과' 숨기지 말고 평가는 국민이
광복회 이권 사업 단절하고 정치적 중립 지킬 것

편집자주

첨예한 이슈를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뉴라이트 계열 학자를 중심으로 제기된 ‘1948년 건국론’ 논쟁이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불붙었다. 지난 6월 취임한 이종찬 광복회장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겠다”고 작심하면서부터다. 이후 광복회는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고, 3일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도 갖는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쐐기 박고 일체의 ‘건국론’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자 건국론 주창자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신호탄으로 보수 진영 내부의 거센 반격이 시작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건국 100년’을 언급하면서 보수와 진보 간 대결구도가 형성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보수 진영 내부에서 “누가 더 오른쪽이냐”를 가르는 기준으로 논쟁이 번지는 모습이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인 이 회장은 광복절 78주년을 앞두고 지난 1일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건국론 주장은 매국”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서 “건국론자들은 북한을 흉내 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으로 각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 신격화를 위한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괴물기념관이라고 이 회장이 강하게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막역한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친인 이 회장은 취임 직후 “국가의 정체성만 바로 서면 나라가 정상화된다”는 메시지를 윤 대통령에게 받았다. 국가 정체성 문제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 때 실추된 광복회 위상 재건을 위한 구상과 정부의 보훈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대한민국 연호 사용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1948년 건국론 주장을 펴는 이들이 북한을 흉내 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인가.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북한은 임시정부는 물론 기미년 독립선언 정신도 부정한다. 1919년에 7세에 불과했던 김일성의 항일 업적을 만들기 위해, 1926년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고 역사를 날조하는 게 북한이다. 실제 북한 헌법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는 문구가 있다. 김일성이 왕조의 창건자이며 시조라는 얘기다. 유감스럽게, 건국론 주장을 펴는 이들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앞세워 북한과 유사한 논리를 편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신하면서 김일성과 비유를 맞추는 것이다. 북한 흉내를 내자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왕정이 끝나고 민주공화정 시작을 알린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선언을 출발로 봐야 한다. 3·1운동 직후 수립된 임시정부 헌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한다'고 돼 있고, 현행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표현으로 승계됐다. 이뿐만 아니라 독립선언서에서도 건국은 1919년 기준으로 4252년 전이라고 했다. 제헌헌법 전문에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라는 문구가, 현행 헌법 전문에도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강조한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개원 시 국회의장이었던 이 전 대통령은 축사에서 '이 국회에서 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다. 민국 29년 만에 부활됐기 때문에 민국 연호를 기산해 대한민국 30년에 정부수립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선 분이 이 전 대통령이다.“

-국가보훈부가 대전 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정보에서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삭제해 뒷말이 무성하다.

“백 장군이 1939년 만주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간도특설대에 부임한 것은 사실이다. 본인도 인정을 한 만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또 해방 이후 1946년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등 업적도 남겼다. 6년간의 친일, 40년간의 대한민국을 위한 공헌이 같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숨기지 말고 다 공개하고, 평가는 국민들에게 맡기면 된다.“

-보훈부가 최근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에서 광복회장을 빼 논란이다.

“보훈부에서 광복회장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요령이 부족한 것 같다. 광복회장을 당연직에서 빼고 광복회장이 추천한 인사를 몇 명 넣었으면 잡음이 없었을 것이다. 차관이 찾아와 사과했는데 그에게 이제 보훈부로 승격했으니 매사에 정무 감각도 갖길 바란다고 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미치는 파장까지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김일성 일가 서훈은 민감한 문제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정부가 독립유공자 서훈 재검토 추진 가능성도 내비쳤다.

“지난 정부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위원장을 제안하길래 처음에 맡지 않겠다고 했더니 이유를 묻더라. 그래서 임시정부를 백범 김구 선생이 전부인 듯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원봉부터 이승만까지 좌우 가리지 않고 다 기념관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문 전 대통령이 '김원봉은 서훈도 못 하고 있다'고 하길래 서훈은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바가 없고, 북한 정권 수립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우리가 훈장을 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헌영 부인 주세죽이나 김일성 외삼촌 강진석 서훈 박탈 얘기도 있는데.

“주세죽은 1945년 독립 이전에 이미 죽었다. 굳이 서훈 박탈까지는 필요 없다고 본다. 다만 김일성 일가는 좀 민감한 문제다. 이들은 해방 전에 죽었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판단을 보류하는 게 어떨까 싶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분열과 대립으로 얼룩진 광복회다. 위상을 되찾기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광복회는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돕는 단체다. 일부 전임자들이 2세 시대가 왔는데 봉사할 생각은 안 하고 혜택을 누리려고만 했다. 내가 회장을 맡고 가장 우선한 게 회원들의 신임 회복이다. 일단 회장인 저를 비롯해 국장단이 무보수 봉사를 선언하고 실천에 옮겼다. 또 계파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유능하고 돈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을 등용하고 있다.”

-광복회 재정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괜히 이권 사업한다고 손해만 끼쳤다. 이권 사업으로 번 수익의 한 푼도 광복회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권 사업을 단절시켰다. 독립유공자 중에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이 거의 없다. 혁명과 돈 버는 재주는 다르다. 혁명이 직선이라면, 사업은 융통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독립유공자들은 사업에 필요한 DNA가 없다.”

※공법단체인 광복회는 정부로부터 매년 20억 원 수준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김원웅 전 회장 재임 시절 공금 횡령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정치적 중립성도 과제다.

“광복회는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회장 취임 전까지 간접적인 정치활동을 했던 나도 조심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 초월적 입장에서 실체적 진실만 얘기하면 된다. 그래야 국가의 원로단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단적으로 나는 극우의 건국론도 배척하지만 '임시정부 건국이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한 문재인 전 대통령 주장도 반대한다.”

DJ가 인정한 국정원법 무너뜨린 文 정부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1층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들이 소개돼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1층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들이 소개돼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를 개혁해 지금의 국가정보원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국정원의 탄압을 받은 사람이 없다. 그런 김 전 대통령이 최소한 이 선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인정해서 만들어진 게 국정원법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내가 그 법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나중에 대공수사권까지 넘기더라. 그건 상당히 악의적이다. 대공 수사는 이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찰 인력으로 감당해 낼 수 없다.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면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

-한미일 관계가 밀착되면서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들의 유물이 보관된 중국 다롄시 뤼순감옥 박물관 전시실의 잠정 폐쇄 얘기까지 들린다.

“얼마 전에 전남도 광복회원들이 중국을 통해 백두산 순례를 다녀왔는데 플래카드 든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예정에 없던 윤동주 생가 방문을 타진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아주 썰렁한 분위기였다고 하더라. 중국이 이런 나라다. 하지만 우리가 지정학적으로 중국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최근 공개된 북한의 전승절 70주년 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보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부각시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 우리가 위험을 덜 받는 쪽으로 외교 관계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은 육군사관학교 16기 출신으로 소령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다. 5공화국 출범 이후 정계에 입문해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1~14대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고, 올해 5월 23대 광복회장에 선출됐다. 아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이 회장이 국가보훈처의 부(部) 승격 등을 윤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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