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 여성에게는 아이가 셋 있었다. 셋째 아이는 계획에 없었다. 그런데 넷째 아이가 생겼다.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밀출산을 결심했다. 여성은 출산 후 아이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출산 3, 4시간 만에 아이를 떠났다."
독일 27년 차 베테랑 조산사 크리스틴 맥이 지난 4월 지역 언론 인프란켄에 말한 비밀출산 일화다. 비밀출산은 임산부가 자신의 신원을 알리지 않고 출산한 뒤 아이를 정부에 맡기는 제도다. 영아 살해를 막기 위해 2014년 독일에 도입됐다. 아이가 16세가 되었을 때 엄마의 신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아이 알 권리도 어느 정도 보장한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내밀한 사안을 여성과 공유한 맥은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여성의 구체적 사정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맥은 말했다. "나는 비밀출산을 지지한다. 엄마가 보호받지 못한 채 홀로 방치되는 상황에서는 아이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임신중지(낙태)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여성은 아이에게 생명을 줬다." 임신으로 인한 두려움을 사회의 지원 없이 홀로 감당한다면, 여성의 불안이 어떤 얼굴의 비극으로 나타났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독일에선 '영아 안전'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산모 안전'이라고 본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산모가 하루빨리 제도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 창구를 많이 열었다. 임신 기간에는 물론이고 출산 후에도 세밀하게 챙기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개인의 사정을 평가하거나 비정한 엄마라고 차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독일의 제도를 본 뜬 보호출산 제도의 도입 여부를 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영아 살해를 막을 현실적 해법"이라는 주장만큼이나 "영아 유기 풍조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선진국 제도라 하여 덮어두고 찬성할 수는 없다. 논의를 매듭지으려면 한국만의 고민이 더 필요하다. 다만 분명한 건 논의의 중심에 산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맥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성의 비밀출산을 아는 이는 맥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아이 아빠. 비밀출산은 남편과 함께 내린 결정이었다. 한국의 고민 과정에서 아빠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아이의 불쌍함'과 '엄마의 책임'에만 논의가 매몰된다면, 해법은 반쪽짜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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