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혜미 기자가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책 만드는 게 여전히 재밌어요. 작업한 책을 계기로 저자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걸 보는 게 큰 보람이죠. 치열하게 논쟁하며 창작을 부추기는 것도 즐겁고요."
얼마 전 책 허투루 만들지 않기로 정평이 난 출판사 '혜화1117' 이현화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펴낸 책 끝에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이라는 기록을 남깁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출간 후 언론 평가, 독자들과 만들어 간 이야기까지 세세하게 날짜를 기입해 남기는데, 재쇄를 찍을 때마다 내용을 업데이트한다니 여간 수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편집자, 출판사 대표, 서점 주인, 저자... 책을 사랑하여 기어코 만들고 파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방망이 깎던 노인(1977년 윤오영의 수필)'의 노인처럼 시류와 맞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면모를 엿봅니다. 교정지와 책등에 깃든 꼿꼿한 고집, 숭고한 자부심을 읽으면서 말이지요.
"내 것이 아닌 문장들을 고치고, 바로잡고, 다듬는다. 시간을 견디는 일은 속절없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버석버석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이 일이 곧 내 삶이려니 한다." 편집자 오경철은 책 '편집 후기(교유서가 발행)'에서 업을 '지리멸렬을 견디는 일'이라 표현합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을 만드는 그 마음이 무엇이느냐"고.
'활자예찬'이라는 새 코너를 독자 여러분께 내어 놓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4.5권,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일 정도로 출판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주 100권이 넘는 신간을 골똘히 살피는 출판 담당 기자로서 "인간이 창안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라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의 말을 기억합니다. 책이라는 사물이 품은 가능성을 옹호하고, 독서 문화를 비평하고, 출판계의 흐름을 짚으며, 활자가 끌어온 문명을 예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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