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아파트 하자 처리 매년 4,000건
하자 분쟁 13%는 10대 대형건설사
건설현장 10곳 중 4곳 불법하도급
연초 새집으로 이사할 생각에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김모씨는 입주 전 사전점검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계상 벽돌로 채워져야 할 외벽은 흙으로 채워져 있고, 일부 단지는 보온재가 그대로 노출될 만큼 시공 상태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외부 창틀은 검정 테이프로 마감 처리하는 등 집 내부 마감도 기대 이하였다. 이 단지는 경기 고양시 삼송지구에 현대건설이 지은 타운하우스로 분양가만 8억~10억 원대다. 김씨는 "보상안과 함께 하자 보수를 이행하겠다고 해 입주하긴 했지만 대형사 실력이 이 정도인가 싶어 대단히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한국은 해외에서 난도 높은 건설 프로젝트를 척척 따낼 만큼 건설 강국으로 꼽히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면 평가가 180도 달라진다. 언론에 소개되지 않을 뿐 김씨 사례처럼 부실 시공에 따른 소비자 불만이 매년 4,000건에 육박해 '아파트 하자 왕국'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하자 분쟁 10%는 대형사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6월 국토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조정위)에 들어온 하자 분쟁 건수는 1,290건에 이른다. 정부는 공동주택을 둘러싼 하자 분쟁이 심해지자 2009년 관련 법을 개정해 조정위를 세웠다. 2014년 이후부터 연평균 분쟁 처리 건수가 4,000건에 이를 만큼 매년 하자 분쟁이 급증하는 추세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대형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 조정위에 접수된 하자 분쟁(4,317건)의 13%가 10대 대형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서 나왔다.
정부가 낸 하자 사례집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시공 실수가 많다. 설계 도면엔 바닥 아래 완충재를 넣어야 한다고 표시돼 있지만, 시공 과정에서 이를 빠뜨리는 식이다. 층간소음을 견디다 못한 입주민이 건설사에 항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정위에 분쟁 신청을 했고, 조정위가 바닥을 뜯고 나서야 이런 시공 실수를 발견했다.
통계에서 드러나듯, 김씨 사례처럼 입주 시기만 되면 건설사마다 하자 관련 분쟁이 넘쳐난다. 지난해 연말 부산의 한 재개발 아파트 단지에선 입주를 앞두고 하자가 쏟아지자 입주 예정자들이 단체로 건설사 본사를 찾아가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내부 마감이 덜된 집이 수두룩했고, 일부 화장실엔 대변이 남아 있기도 했다. 최근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에 이어 집중호우로 유명 브랜드 아파트까지 침수하는 일이 잇따르자, 부실 시공 관행이 업계에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건설현장 10곳 중 4곳 불법하도급 적발
이는 예견된 일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불법 하도급이 판치고, 이를 걸러내야 할 감리(감독)가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자연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5월부터 불법 하도급을 단속 중인 국토부가 최근 내놓은 중간결과를 보면, 단속 현장 292곳 중 108곳(37%)이 불법 하도급을 주다 적발됐다. 적발 건수는 총 182건인데, 이 중 68%인 124건은 무자격자에게 일감을 준 경우다. 아파트 신축 공사에서 지하수를 차단하는 차수공사를 맡은 하청기업이 아무 자격도 없는 장비업체에 재하도급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불법 하도급을 안 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현장 6곳의 일감을 따야 수익이 나는데 이 현장을 다 갈 수 없으니 다시 재하청을 준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도급사는 원도급사가 받는 돈의 70%를 받지만, 불법 하도급은 14%에 그친다"고 했다.
감리는 설계대로 공사를 하는지 현장에서 점검하는 역할이지만, 감리소장 역량에 따라 차이가 현저히 난다는 게 업계 얘기다. 감리소장의 30%는 '있으나 마나' 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구나 시공사가 감리사를 선정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감리회사는 시공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1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와 올 4월 검단신도시 붕괴 사고 역시 감리가 현장의 부실 시공을 걸러내지 못하면서 빚어졌다. 최근 경기 파주의 건설현장에선 감리회사와 시공사가 설계 변경을 제때 반영하지 않아 결국 공사가 두 달 넘게 지연됐고, 시행사가 이들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거는 일도 있었다. 시공사가 공사비를 더 남기려고 이런 무리수를 뒀지만, 감리사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공공보다 민간 현장에서 부실 감리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시공 환경도 열악해지는 등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닌 만큼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의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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