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레프론 씨의 수프'
반짝이는 털과 쭉 뻗은 귀를 가진 잘생긴 산토끼, 레프론 아저씨는 세계 최고의 수프 요리사다. 그의 수프는 가족과 동네 주민들은 왕과 왕비, 심지어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감탄하는 맛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수프를 대접하고 싶었던 그는 밤낮으로 수프만 끓이는 커다란 수프 공장을 세웠다. 그런데 수프 맛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도대체, 왜?
그림책 '레프론 씨의 수프'는 수프 장인 '레프론' 아저씨가 잃어버린 수프 맛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공장을 만든 후 아저씨는 맛있는 수프를 만드는 일보다 수프를 어디에 얼마나 팔 것인지에 집중했다. 일에 치인 채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저씨. 꿈도 함께 변질된다. 처음엔 소소한 배송 실수로 시작했지만 결국 손주 토끼가 수프 냄비에 빠져 죽는 꿈까지 꾼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일에 허우적거리다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과 판박이다.
멋진 외모도 평판도 잃은 아저씨는 뒤늦게 수프 맛의 비법이 '자신의 태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프를 만들 때마다 쏟아부었던 '사랑과 정성' 말이다. 작가의 짜임새 있는 글과 서정적인 그림에 즐겁게 빠져들다가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더 많이, 더 빨리 가려는 욕심에 눈에 멀어 정작 일의 본질은 놓치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책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레프콘 아저씨가 낸 용기를 보여주며 다시 한번 일격을 가한다. 고민 끝에 수프 공장 문을 닫은 그는 일 년에 딱 한 번, 가을의 첫날에 아무도 모르게 수프를 만들기로 했고, 맛은 돌아온다.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초심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수많은 레프론씨들에게 만만치 않은 교훈을 전하는 책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