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아웃사이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아주 '정치적인' 일주일 행보
편집자주
자기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지난달 가장 인상적인 정치 뉴스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의 활약이었다. 7월 26일 국회에서는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전체회의가 있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논란’에 대한 현안 질의가 있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출석했다. 원희룡 장관은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은 ‘수변구역’이어서 국회에서 법을 바꾸기 전까지는 개발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 의원은 원 장관의 주장이 왜 사실이 아닌지 조목 조목 반박했다. 법률적으로도 예외조항이 많고, 이미 김건희 여사의 엄마 최은순씨가 100억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전례도 있다. 이 의원의 활약은 유튜브 동영상에서 10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활약이었다. 지난달 15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인 500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한 장관을 초청하는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제목은 ‘경제성장 이끄는 법무행정과 기업의 역할’(이하 ‘경제성장 발표’)이었다. 한 장관의 영상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경제성장은 이승만과 조봉암의 ‘농지개혁’처럼
이 의원의 국토위 질의는 준비를 잘한 의정활동 모범사례였다. 한 장관의 경제성장 발표는 잘 준비한 정치활동의 모범사례였다. 한 장관의 행보가 갖는 의미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한 장관의 발표는 약 40분이었다. 전반부 20분은 농지개혁을 다뤘다. 후반부 20분은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민개혁을 다뤘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결정적 정책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특히 농지개혁을 꼽았다. 소작 생활을 하던 농민들이 자영농으로 거듭나게 됐고, 한국의 기업가들이 탄생하는 동력이 됐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은 인구문제가 중요하다. 그 해법으로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민개혁의 내용을 소개한다.
한 장관의 경제성장 발표는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놀라웠다.
첫째, 역사 인식과 논리적 짜임새가 잘 배치되어 있었다.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스토리텔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과거에는’ 농지개혁이 중요했고 ‘앞으로는’ 이민개혁이 중요하다. 그것을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람은 한동훈 장관 본인이다. 자연스럽게 본인이 추진하고 있는 법무부의 이민개혁을 과거 농지개혁만큼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켰고, 설득력을 발휘했다.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은 한 번씩 봐두면 좋을 영상이다.
둘째, 균형 감각과 개방적 태도다. 역대 보수와 진보 대통령들의 성과를 균형있게 평가하고 있다. 예컨대, 농지개혁을 추진했던 주체로 ‘이승만과 조봉암’을 동시에 언급한다. 언론은 한동훈 장관이 이승만을 추켜세운 것을 부각했다. 그러나 발표 영상을 직접 보면 조봉암 역시 언급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과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모범적인 정책 사례로 언급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 정치인은 진보의 성과를 폄훼하고 진보 정치인은 보수의 성과를 폄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보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성과에 인색하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성과에 인색하다. 한국 정치인들의 이런 태도는 동시에 ‘이념 편향적인’ 행태다. 한동훈 장관의 발표는 이런 행태와 차별화됐다.
셋째, 솔루션 중심 사고방식이다. 이승만과 조봉암, 박정희와 노무현을 같이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념적’ 기준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솔루션’ 중심의 접근을 보여준다. 농지개혁의 역사적 역할을 적극 인정하고, 유사한 문제의식으로 이민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발상도 솔루션 중심의 접근이다.
요약해보자. 한동훈 장관의 대한상의 발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다. 역사 인식,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 솔루션 중심의 접근법이다. 이러한 한동훈 장관의 접근법은 그간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전통 보수, 전통 진보 모두와 구별된다.
‘아주 정치적인’ 일주일 – 호남, 제주4•3, 사회통합, 경제성장
한 장관의 대한상의 발표는 지난달 15일 토요일에 있었다. 그런데, 앞서 10일에는 전남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를 방문했다. 전남 영암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바로 옆에 위치한다. 다음 날인 11일에는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만난다.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하는데 여당과 야당의 마음은 같아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다. 14일에는 제주 4·3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을 찾아 격려한다. 종전에는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해서만 직권재심 청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법 개정을 통해 일반재판 수형인도 직권재심 청구가 가능해졌다. 한동훈 장관은 "상식과 정의를 기준으로 국민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 진영논리나 정치논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 1,800명의 제주 주민들이 제도 개혁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정리해보면, 한동훈 장관의 지난달 10일부터 15일간의 행보 전체가 ‘잘 준비된’ 정치행보였다. 조선소는 영남 지역에 더 많다. 거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굳이, 목포 옆에 있는 영암의 삼호중공업을 방문했다. 행보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호남, 제주 4•3, 농지개혁, 이민개혁, 경제성장이다. 키워드가 의미하는 것은 사회통합, 경제비전, 이념적 진영논리를 초월한 솔루션 중심 접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존의 보수 정치와 몇 가지 점에서 달랐다. 첫째, 국민의힘 정당 내부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아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외부에서 굴러온 돌이기에, 상대적으로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신세 진 것이 별로 없다. 차별화가 용이하다. 둘째,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 국무회의 각료 대부분과 함께 참석했다. 광주시민들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대선후보 당시에는 일본 문제에 대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 공을 적극 인정했다. 같은 해 6·10 민주화운동 기념일에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는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의 노래 ‘벗이여, 해방이 온다’의 주인공이기도 한, 1986년 민주화를 위해 분신했던 서울대 학생이다.
그해 6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혁당 가족들의 억울한 이자부담을 덜어주는 법원의 화해 결정을 전격 수용했다. 제주 4·3 직권재심을 일반재판 수형인에게 확대 적용한 것, 농지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부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냉전 세력은 탈냉전이 되면 망하고,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가 되면 망한다
2014년 12월 19일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날이었다. 그날 판결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안정국’ 등을 우려했다. 그러나, 당시 내 판단은 달랐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한국의 냉전 우파가 ‘자신들의 산소호흡기를 끊은’ 사건이었다. 한국의 냉전 우파는 ‘냉전 좌파 덕택에’ 존재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냉전 좌파가 사라지면, 냉전 우파가 발 딛고 있는 존재의 명분도 함께 사라진다. 역사의 변증법이다.
냉전 세력이 탈냉전이 되면 위기에 빠지듯, 민주화 세력도 민주화가 되면 위기에 빠지게 된다.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가 아닌, 권위주의 세상’에서 존재감이 빛난다. 한국의 보수가 민주화운동의 공을 적극 인정할수록, 민주화세력은 ‘존재의 고독’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한동훈 장관은 ‘탈냉전 스마트 우파’의 출현을 상징한다. 보수는 제주 4·3 피해자에 대한 역사적 위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적극 인정할 필요가 있다. 탈냉전 스마트 우파가 많아질수록, 한국 정치는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탈냉전 스마트 좌파’의 출현도 더 빨라질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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