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정책' 회의록 비공개 일관 국민연금
직면한 기후 재난, 수익률 저하 우려되는 미래
청년단체 긱(GEYK)·60+기후행동 행정소송까지
"우리 자녀와 국민을 힘들게 한 대가는 싫다"
"미래세대를 위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후 재난은 이미 현실인데, 미래 수급자를 위해 당장 '탈석탄'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게 틀린 말인가."
지난달 28일 서울 성동구의 커뮤니티 오피스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김선률(25)씨가 반문했다. 그는 "2021년 5월 탈석탄 선언을 하고도 2년 넘게 석탄투자제한정책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국민연금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 국민연금기금 운용·관리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기후위기는 가장 취약한 지역과 계층, 어려운 이웃들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해 결국은 모든 인류의 삶을 위협할 것"이라며 "탄소배출 감축 필요성에 공감하고, 석탄 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제한전략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상반기 중 단계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지만 아직까지 탈석탄 투자의 기준조차 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국민연금법상 회의록은 1년 후 공개가 원칙인데 기금운용위원회는 회의록 공개도 거부하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예외 사유"라는 게 회의록을 숨기고 있는 이유다. 결국 김씨가 속한 기후변화 청년단체 긱(GEYK)과 노년 기후단체 60+기후행동은 지난달 11일 기금운용위원회 당연직 위원장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석탄투자제한 정책 관련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기후단체들이 국민연금의 탈석탄 투자를 재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수익률 저하다.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심화되고 화석연료 사용 규모가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금융기관들이 탈석탄 투자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연기금의 변화는 뚜렷하다. 기금운용규모 세계 2위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17년부터 석탄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30% 이상인 기업 등에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규모가 가장 큰 일본 공적연금 역시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한다. 네덜란드공무원연금,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등 해외 유수의 연기금들도 이미 탈석탄 투자를 시행 중이다.
영국 호주 미국 등에서는 수년 전부터 시민들이 연기금에 서한을 보내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 탈석탄 투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시민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투자로 가입자의 연금 수익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미 낸 만큼 나중에 돌려받기 어렵다는 회의감이 팽배하다"며 "이럴수록 투자를 잘해서 연금을 돌려줄 생각을 하는 대신 당장의 손실만 걱정하며 좌초자산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석탄 투자를 계속하는 게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수급자들의 건강을 위협할 우려도 있다. 국민연금의 석탄자산 투자액은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6조~10조 원 규모다. 기금 전체(2022년 기준 948조 원)로 보면 비중이 크지 않아도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하고 상당한 온실가스를 내뿜기에는 충분한 금액이다. 박병상(66)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지금 같은 석탄 투자가 계속 이뤄진다면 우리가 받는 국민연금은 우리 자녀와 국민을 힘들게 한 대가와 다르지 않다"라며 "그런 돈은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와 박씨를 비롯한 기후단체 활동가들은 행정소송과는 별도로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복지부 등에 지속적으로 "석탄투자제한정책 수립 지연 이유를 설명하고 향후 계획을 발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 수급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탈석탄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수급 상황이 악화되는 등 대외 환경을 고려하며 결정하고 있다"며 "기대가 큰 만큼 정책이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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