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동물복지]
산란계·임신돈 동물복지 갈등
사회적 합의 전 기준부터 올려
"농가·서민 부담 늘려 실패 우려"
‘행복한 축산’을 내건 동물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 하지만 정부의 ‘동물복지 드라이브’를 바라보는 농가의 속내는 복잡하다. 법으로 정한 동물복지 규제를 따르자니 경영 손실이 불가피하고, 정부가 연착륙 방안 마련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어서 결국 ‘빚더미 동물복지’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문제 제기는 계속했지만...
갈등이 첨예한 사안은 산란계의 사육면적 확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 계란 살충제 파동 원인으로 지목한 밀집사육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듬해 7월 축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2025년 9월 1일부터 산란계 사육면적을 마리당 0.05㎡에서 0.075㎡로 1.5배 늘리는 내용이다.
A4용지보다 작은 거주공간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선의는 준비 없는 현실 앞에서 빛을 잃는다. 당장 산란계 사육 규모 급감 우려만 해도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다.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사육면적 확대 시 직립식 우리의 개당 사육 수는 7마리에서 4마리로, A형 우리는 3마리에서 2마리로 줄어든다. 사육 규모가 직립식은 43%, A형 우리는 33% 쪼그라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사육 시설을 새로 지을 수도 없다. 한만혁 무지개농장 대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축사육제한구역 조례를 강화해 땅이 있어도 사육 시설을 신축할 수 없고, 증축도 불가하다”고 토로했다.
사육 규모 감소는 농가 소득에 직격탄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축산업 구조 개선 대책 마련 연구’에서 사육면적 확대 이후에도 계란 판매가격이 같을 경우 농가 소득은 42.5%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계란 가격을 높이자니 소비자 수용성이 떨어진다. 어떻게 하든 경영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두영 대한산란계협회장은 “계란 가격이 치솟아 국민 반발이 심해지면 결국 수입란 도입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사육 기준을 강화해 국산 계란 가격은 높여 놓고, 동물복지와 아무 관계없는 수입 계란을 무방비로 들여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격경쟁력을 잃은 농가가 이탈하면서 산란계 산업이 위축되고, 계란 수급 문제가 심각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계란 수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다”며 “현재 여러 대책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혜원 한국동물복지연구소장은 “단계별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농가 우려를 해소하고, 동물복지 식품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정부는 지난 5년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의지 못 따라가는 정책
2030년 1월부터 전면 적용되는 임신돈에 대한 사육 틀(스톨) 사육 금지 역시 ‘대책 없는 동물복지’ 우려를 키우고 있다. 현재 돼지는 출산 직전까지 가로 60㎝, 세로 220㎝의 스톨에서 산다. 2020년 1월 축산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모든 양돈농가는 2030년부터 수정 후 6주까지만 임신돈에 대한 스톨 사육이 가능하다. 이후에는 별도로 만든 군사(무리로 사육하는 공간)에서 관리해야 한다.
사실상 사육 공간을 넓히는 조치여서 사육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농가 손실 보전, 임신돈의 출산율에 미칠 영향, 환경 변화에 맞춘 사육법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양돈농장 대표는 “서열을 명확하게 짓는 돼지 특성상 군사 내 서열 경쟁으로 유산·사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서열에 밀려 먹이 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며 “기준만 강화해 놓고 나머지는 농가에서 알아서 하라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복한 축산을 내건 동물복지가 농가와 소비자의 행복을 제한하는 쪽으로 가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생산자·학계의 공통 의견이다.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산란계 사육면적 확대나 스톨 금지 모두 기후 등이 다른 유럽연합(EU) 규정을 따온 것”이라며 “모의실험으로 여러 영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국형 사육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육 규모 감소 피해를 막으려면 농장이 속한 대지의 건폐율 범위 안에서, 사육 수를 늘리지 않는 조건으로 사육 시설 신축·증축을 허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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