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례식장까지 쫓아온 학부모... 악성민원에 한 초교서 교사 2명 극단 선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례식장까지 쫓아온 학부모... 악성민원에 한 초교서 교사 2명 극단 선택

입력
2023.08.08 21:00
8면
0 0

20대 4~5년 차 담임교사
퇴근 후 학부모 항의전화 시달려
군 입대 후에도 치료비 요구 연락
학교 측은 "알아서 해결해라"

2021년 경기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6개월 새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김은지(당시 23·왼쪽사진) 교사와 이영승(당시 25·오른쪽) 교사. MBC 뉴스 유튜브 캡처

2021년 경기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6개월 새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김은지(당시 23·왼쪽사진) 교사와 이영승(당시 25·오른쪽) 교사. MBC 뉴스 유튜브 캡처

2년 전 경기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두 명의 교사가 6개월 새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은 4~5년 차의 20대 교사였으며, 숨지기 직전까지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으로 학부모 악성민원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들 사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2021년 경기 의정부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은지(당시 23) 교사 휴대폰 기록. MBC 뉴스 유튜브 캡처

2021년 경기 의정부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은지(당시 23) 교사 휴대폰 기록. MBC 뉴스 유튜브 캡처


퇴근 후 학부모 전화 시달려…입대 후에도 치료비 요구

8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경기 의정부의 한 초교에서 5학년 3반 담임을 맡았던 여성 교사 김은지(당시 23세)씨와 5학년 4반 담임이었던 남성 교사 이영승(당시 25세)씨가 2021년 6월과 12월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 등에 따르면 김 교사는 2017년 3월 이 초등학교에 발령받은 지 한 달 만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사직서를 내자 학교가 만류해 담임 대신 음악 전담 교사를 맡았지만 1년 뒤부턴 다시 담임을 맡아야 했다.

김 교사의 아버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퇴근해서도 학부모들한테 전화받는 것을 수시로 봤다"며 "애가 어쩔 줄 몰라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굉장히 전화받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걱정하는 부모에겐 '학교 문제'라고만 하고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교사가 휴대폰에 남긴 일기에는 "머리 때림. 팔 꺾음. 뒤에 서서 이야기하는데 밀치고 때림. 아이들이 머리 위에 있다" "긴급회의가 있으니 학교로 오라는 문자를 받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밝게 인사하자. 당황하시든, 반겨주시든, 냉랭하시든" 등 교내 문제로 힘들었던 정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는 5학년 담임을 맡은 지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학교 교사였던 이영승 교사도 부임 후 처음 담임을 맡은 반 학부모에게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사 아버지는 "'페트병 자르기' 수업을 하다 한 학생이 손을 다쳤는데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느니 해서 학부모에게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듬해 휴직 후 군 복무를 위해 입대했지만 학교 측은 이 교사 소속 부대에까지 전화해 "학부모에게 돈을 주든가, 전화 안 오게 해라"고 요구했다고도 했다.

2021년 경기 의정부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영승 교사가 휴대폰에 남겼던 메시지. MBC 뉴스 유튜브 캡처

2021년 경기 의정부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영승 교사가 휴대폰에 남겼던 메시지. MBC 뉴스 유튜브 캡처

이 교사가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와 5학년 담임을 맡은 2021년에도 학부모 민원이 있었다. 담당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한 학생의 학부모는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시로 연락했다. 이 교사가 '방과 후 수업이 있어 오늘 만나긴 어렵다'고 하자 막무가내로 교실에 찾아오기도 했다. 이 교사는 "(자신의 자녀를 괴롭힌 아이들이) 공개 사과하도록 해달라" "선생님은 그 아이들만의 선생님이냐. 우리 아이는 버린 거냐" 등의 학부모의 항의를 받은 다음 날 숨졌다.

그가 남긴 휴대폰에는 "아이들은 평범한데 제가 이 일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힘들었어요. 죄송해요"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이 교사의 아버지는 "문제 있는 학부모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알아서 해결하라고만 했다"고 했다.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이영승 교사 장례식장에 한 학부모가 찾아와 내부를 한참 노려보고 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이영승 교사 장례식장에 한 학부모가 찾아와 내부를 한참 노려보고 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밝고 책임감 강했던 교사들…학부모는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두 사람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시 상황을 아는 이들이 글을 올리고 있다. 한 누리꾼은 "당시 학교 측이 김은지 선생님은 결혼 문제, 이영승 선생님은 심장마비라고 해 다른 선생님들은 사정을 모르다가 이영승 선생님 장례식장에 가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썼다. 이어 "한 학부모는 이영승 선생님이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와서 한참 노려보고 갔다. 아마 자기 전화를 피하는 줄 알고 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두 분 다 순하고 싫은 소리 못 하는 분들이었다"면서 "이영승 선생님은 친목회 총무였는데 사망 직전 친목회비를 다른 선생님에게 계좌이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교사 2명이 6개월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학교와 경기도교육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은 해당 언론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학교 측이 교육청에 보고했던 사망원인은 두 명 다 개인 사유에 의한 추락 사고였다"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다라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