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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썩은 부위 도려낼 것… 사전투표 논란 없애려면 인력·예산 늘려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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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선관위 썩은 부위 도려낼 것… 사전투표 논란 없애려면 인력·예산 늘려야”[인터뷰]

입력
2023.08.10 04:30
수정
2023.08.10 15:5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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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인터뷰
"자녀 채용, 부모 후광 기대해 사사로운 정 개입된 듯"
"윤 대통령, 대학 2학년 이후 본 적 없어"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는 선관위원장 인사권 형해화"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8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서재훈 기자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8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서재훈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963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에서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신뢰성에 금이 갔고, 5월엔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도덕성마저 추락했다. 독립기관이라는 명분으로 철옹성을 쌓고 무능과 도덕적 해이를 방치해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선관위를 개혁하고자 지난달 26일 사무총장(장관급)을 35년 만에 외부에서 수혈했다. 고위 법관 출신인 김용빈 사무총장은 8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외과의사의 심정으로 썩은 부위를 도려낼 것”이라고 강력한 쇄신 의지를 밝혔다. 다만 내년 4월 총선준비에 대해서는 “공명정대한 선거를 요구하면서도 그 여건을 갖추는 일에 정부나 국회가 너무 안 도와준다”며 "사전투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대국민 공청회라도 열고 싶은 마음"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 사무총장의 언론 인터뷰는 취임 후 처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관위 자체조사 결과 자녀·친인척 경력 채용이 20여 건이나 드러났다. 원인은.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30년 넘는 법관으로서 공직 경험에 비춰보면 고위공직자 부모와 같은 기관에서 일하면서 부모의 후광으로 덕을 보려는 마음, 그리고 자녀에게 같은 직업을 물려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건 다른 기관 공무원도 마찬가지일 텐데, 왜 선관위에서만 이런 일이 생겼나.

“다른 기관에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단 선관위는 선거 때는 조직이 일시적으로 커지지만 평시에는 상당히 적은 인력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평상시에는 3,000명 정도가 전국의 각급 선관위를 운영하고 있다. 권한에 비해 인원수가 적고 분위기가 가족적인 편인데, 그러다 보니 사사로운 정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8일 선관위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8일 선관위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내부 출신인 전임 사무총장 역시 자녀 채용으로 물러났다. 외부 출신으로서 조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아프더라도 곪고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 외과의사의 심정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내가 선관위에 온 이유이다. 나는 공직자로서 ‘지인용’(智仁勇ㆍ지혜, 어짊, 용기)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 또한 용기이다. 요즘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일부 공직자는 조금이라도 자기 책임을 줄이려고 변명을 하는데, 용기를 발휘해 자신의 잘못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 윤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쇄신에 나서겠다. 다만 낙담한 조직원들을 잘 다독여서 21대 총선 관리를 잘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채용 비리 등을 막기 위한 제도적 대안은.

“대법원 같은 다른 헌법기관처럼 감사관을 외부 개방직으로 채용하고, 감사 업무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외부인의 시각에서 내부를 자정할 수 있는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 증원을 요구해도 긴축 재정 기조라서 그런지 기획재정부나 국회가 좀처럼 호응하지 않는다. 최대한 설득하겠다.”

-선관위는 채용 의혹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감사원 감사를 받으면 되지 않나.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이 감사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 결과가 선관위에 유리하게 나온다면 감사위원회 신설 같은 선관위의 독자적인 감찰 기능 강화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채용 의혹은 선관위의 자정 기능이 작동되지 않아 발생한 만큼 이 건에 한해서는 감사원 감사와 그 결과를 완전히 수용할 것이다.”

-법조인 시각으로 볼 때 헌재가 선관위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나.

“그래야 한다고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이번 일로 헌법을 다시 들여다봤다. 헌법상 선관위는 행정부와 구별되는,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과 나란히 있는 헌법기구임은 분명하다.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감사원 논리는 직무감찰 제외 대상 기관에 국회와 법원, 헌재만 나열한 감사원법 조항이 그 근거이다. 하지만 이는 법률상 당연한 것의 예시를 나열하는 '확인 규정'에 불과하다. 이런 확인 규정에 없다고 헌법상 효력이 없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선관위가 국회나 대법원과 동등하게 취급받는 헌법상 기관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그런 판단이 내려진다면 선관위는 국회나 대법원처럼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또 다른 근거는 인사권이다. 선관위 고위공무원은 대통령이 임명권자인 행정부처 공무원들과 달리 선관위원장이 임명권을 갖고 있다. 법원의 임명권자가 대법원장, 국회 사무처 임명권자가 국회의장인 것과 같다. 감사원이 선관위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 인사를 하지 않은 기관의 일에 왈가왈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관위원장의 인사권을 형해화시키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이다.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데.

“윤 대통령과는 대학교 1, 2학년 시절에는 알고 지냈다. 특별히 기억나는 추억은 없다. 이후 각자 고시공부를 시작한 뒤로는 만나지 못했고, 이후 30년 넘게 법관으로 지내며 단 한 번도 윤 대통령과 만나거나 교류한 일이 없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해 5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해 5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내년 총선까지 8개월 남았다. 선거 준비에 어려움은 없나.

“사전투표 제도 도입 이후 관외 투표와 투표함 보관 등으로 선거 관리 업무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선관위 직원이 3,000여 명에 불과한데 전국 각지의 사전투표소를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은 현재의 인력과 예산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와 국회는 사전투표를 관리할 인력과 예산에는 무관심하면서 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르라고만 요구한다. 정부와 국회에서 현장을 직접 좀 봤으면 좋겠다. 당장 내년 선거부터 걱정이다.”

-사전투표가 문제라는 것인가.

“사전투표 제도는 선거의 편의성을 크게 높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훌륭한 제도이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 뒷받침 없는 상태에서 사전투표를 지속하며 부정선거 논란 등의 빌미를 줘 선관위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이라면, 사전 투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대국민 공청회라도 열고 싶은 마음이다."

-총선을 앞두고 다른 걱정은 없나.

“투표 사무원 모집이 어렵다. 주로 지자체 공무원들이 맡는데, 갈수록 안 하려고 하고 저항이 커진다. 투표사무원은 개표 작업에 평균 15시간 일하는데 하루 수당과 사례금이 10만 원밖에 안 된다. 최저시급에도 못 미친다. 기재부가 투표사무원 수당을 현실화해 달라.”

-선거 때마다 정부, 지자체에 의한 사전선거운동 논란이 거셌다. 내년 선거를 두고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행위는 법 위반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 의혹만으로 선거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관위는 중앙과 지방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선거 관여행위 금지를 안내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반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엄중히 대처할 것이다.”

이성택 기자
김정현 기자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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