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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암사자 '사순이'..."20분간 가만히 앉아있는데 발포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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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암사자 '사순이'..."20분간 가만히 앉아있는데 발포해야 했을까"

입력
2023.08.15 17:08
수정
2023.08.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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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 민간목장의 고령 암사자
"더위 피하려 숲 속 그늘 간 듯" 추측
누리꾼 "마취총, 포획망으로 생포했어야"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가 나무 그늘 아래서 가만히 앉아있다. 사순이는 경찰과 소방본부에 발견된 후에도 20분 정도 계속 앉아있다가 사살됐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가 나무 그늘 아래서 가만히 앉아있다. 사순이는 경찰과 소방본부에 발견된 후에도 20분 정도 계속 앉아있다가 사살됐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 고령군의 한 민간목장에서 탈출한 후 숲 속 그늘에서 20분 넘게 앉아 있기만 했던 암사자를 꼭 사살해야 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고령의 사자였던 만큼 마취총이나 포획망 등으로 생포할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20년간 사람 손에 커...사살 당시 저항 없어"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권 행동 카라'는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같은 날 탈출 한 시간만에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에 대해 "목장주에 따르면 사순이는 새끼 때부터 20여 년 간 사람 손에 길러져 사람을 잘 따랐다고 한다"며 "인근 캠핑장 이용객의 대피가 끝난 상황에서 별다른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앉아 있었던 사순이가 맹수라는 이유로 별다른 숙고 없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만 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14일 오전 7시24분쯤 우리에서 사라졌다는 신고가 접수된 사순이는 약 20분 후 목장에서 20m 떨어진 숲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후 사순이는 20분 정도 숲속에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본부는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사살을 결정, 동행한 엽사가 엽총을 발포했다. 새끼 때부터 이 목장에서 20년 가량 살았던 고령의 암사자는 이렇게 탈출 한 시간만에 세상을 떠났다.

14일 오전 8시 30분쯤 사살된 사순이가 이송을 위해 차에 실렸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8시 30분쯤 사살된 사순이가 이송을 위해 차에 실렸다. 연합뉴스

환경부의 ‘동물 탈출 시 표준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탈출 동물이 원래의 우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위험 정도나 주변 상황에 따라 마취나 사살을 결정할 수 있다. 사순이 포획 현장에 있었던 한 소방대원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사살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며 “인명피해 우려로 사살 결정이 내려졌지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1년 전 이 목장을 인수한 목장주는 연합뉴스에 "평소 사람이 손을 대고 쓰다듬어도 될 정도로 유순했다"고 전했다.

"지붕도 없는 좁은 우리...그늘에 몸 뉘어보고 싶었을 듯"

사순이가 더위를 피해 숲으로 들어갔다는 추측도 나왔다. 지붕도 없는 좁은 우리에 있던 사순이가 목장주가 전날 저녁 먹이를 준 후 제대로 잠그지 않아 열려 있던 문 틈으로 나와 그늘을 찾아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카라는 "탈출 후에 목장 바로 옆의 숲속에 가만히 앉아있던 사순이는 그저 야생동물답게 흙바닥 위 나무 그늘 아래에 몸을 뉘여보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고 밝혔다.

사순이의 생전 모습. 사순이는 비나 햇빛을 막아줄 지붕도 없는 작은 우리에서 지냈다. 온라인 캡처

사순이의 생전 모습. 사순이는 비나 햇빛을 막아줄 지붕도 없는 작은 우리에서 지냈다. 온라인 캡처

사순이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 것으로 보인다. 카라는 "고령임을 감안하더라도 사순이의 몸은 매우 말라있었다"며 "사육장 안은 행동풍부화(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 야생에서의 행동을 할 수 있게해주는 것) 도구 등 사순이의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어떤 사물도 없이 시멘트 바닥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대형 야생동물 보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사순이 목장주도 "사자를 키우고 싶어서 키운 게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소를 방목해 키우려고 목장을 인계 받았는데, 와서 보니 사자가 2마리 있었고 수사자는 인수 전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연합뉴스에 "환경청에 사자 처리를 문의하며 동물원에 기부나 대여하길 요청했으나 맹수 특성상 서열 다툼이 나면 동물원의 다른 사자가 죽는 등 우려로 다들 거부했다고 한다”며 “직전 주인도 처분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의 사순이 우리. 야생과 유사한 환경 등 최소한의 복지도 없이 텅빈 시멘트 우리에서 살았다. 연합뉴스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의 사순이 우리. 야생과 유사한 환경 등 최소한의 복지도 없이 텅빈 시멘트 우리에서 살았다. 연합뉴스

카라는 "사순이처럼 개인이 불법 혹은 사각지대에서 기르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동물들, 김해 부경동물원의 사자 ‘바람이’처럼 부적합한 전시시설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며 "동물들의 고통과 국민들의 안전 위협을 우리 사회가 아슬아슬하게 감당하고 있다. 환경부는 대형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마련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누리꾼들도 사순이가 사살된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누리꾼들은 "멀리도 못 가고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암사자를 꼭 사살해야 했나. 마취총으로는 안 됐나", "마취총을 쏘기 힘들면 포획망을 설치해놓던가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사자 상태보니 비쩍 말라서 뼈뿐이라 도망가고 싶어도 가지도 못했을텐데 사살은 과잉대응 아닌가" 등의 의견을 남겼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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