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늘 새롭게 해석된다. 고전을 잘 읽는 법은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 짓는가에 달렸다. 고전을 통해 우리 현실을 조망하고 이야기한다.
신분은 타고나지 않는다는 외침
'경제적 불평등'의 시대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문명사회 믿음
진승(陳勝)은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는 품삯을 받고 농사를 지었다. 초라한 신세였지만 품은 뜻은 컸다. 하루는 동료에게 말했다. "출세하면 서로 잊지 마세." 동료는 비웃었다. "품삯 받고 농사짓는 주제에 어떻게 출세하겠는가?" 진승은 탄식했다. "제비와 까치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
그 뒤 진승은 변방을 지키는 군인이 됐다. 하루는 징발한 무리를 인솔하여 목적지로 가다가 큰 비를 만났다. 강이 불어 건널 수가 없으니 정해진 기한에 맞추지 못할 판이었다. 진나라 법은 엄격했다. 기한을 넘기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형이다. 진승은 오광과 함께 무리를 부추겼다. "그대들은 기한을 넘겼으니 모두 참수형이다. 장부가 죽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죽는다면 큰 이름을 남겨야 한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
왕후장상은 왕, 제후, 장군, 재상이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는가. 신분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진승이 이렇게 외치자 진나라의 폭정에 신음하던 백성이 일제히 일어섰다. 전국 각지에서 진나라 관원을 죽이고 반란에 가담하는 자가 속출했다. 진승의 무리는 순식간에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진승은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정부군의 압박과 반란군의 내분으로 6개월 만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지핀 불씨는 거대한 화염이 되어 통일제국 진나라를 무너뜨렸다. 사기-진섭세가(史記 陳涉世家)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최초의 농민반란 '진승과 오광의 난'은 민중의 단결된 힘이 강력한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에 각인시켰다. 굳건한 것처럼 보이는 신분제의 벽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도.
비슷한 일이 고려시대에도 벌어졌다. 고려 무신정권기, 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무신들이 횡포를 부리자 노비 만적은 동료 노비들을 불러 모아 선언했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채찍만 맞겠는가. 이 땅에 천민이 없어지면 우리 모두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 수백 명의 노비가 만적과 함께 일어서기로 약속했다. 한국판 스파르타쿠스의 난 '만적의 난'의 시작이었다. 고려사(高麗史)에 나오는 이야기다. 만적은 잡혀 죽었지만 노비들의 신분 해방운동은 계속됐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는가"는 조선 건국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고려 말, 이성계의 세력이 커지자 정몽주는 이성계의 심복 조준과 정도전을 체포하려 했다. 이들을 고문해서 이성계가 반란을 도모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는 계획이었다. 정몽주의 속셈을 간파한 이성계의 수하들은 서둘러 정몽주를 제거하자고 했다. 이성계가 머뭇거리자 정탁이라는 자가 충동질했다.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있겠습니까." 왕 씨만 왕이 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직접 왕위에 올라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는 뜻이었다. 이성계가 끝까지 주저하자 아들 이방원이 대신 나서서 정몽주를 제거했다. 구심점을 잃은 고려는 두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정탁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의견을 처음 발의한 공로로 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버젓한 신분제 사회에서조차 신분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은 건재했다. 그 믿음이야말로 불평등한 현실을 견뎌내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사실상 신분제 사회나 다름없다는 현대 사회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만큼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는 발언도 없을 것이다.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갖고 있다"는 학부모의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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