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국제 스포츠 행사의 막후 조정자
세월 흘러도 여전한 지역·부처 이기주의
잼버리 징비록 핵심은 '제3의 정책 조정'
필자는 안보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지만 오늘은 답답한 마음에서, 아니 국익 차원에서 글의 소재와 주장을 달리하고자 한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각종 국제행사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개최되었다. 2002년 월드컵은 수도권을 비롯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었지만 중앙 정부에서 직접 준비했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중앙집권적인 컨트롤타워의 가동으로 사전에 문제점을 직시하여 신속하게 개선했다. 청와대에서 총감독을 하고 문체부 등 유관기관이 협력하여 목표 시점에 맞추어 경기장 건설, 숙소 등을 마련했다. 이런 일사불란한 업무 추진체계에서도 예산 집행과 법적 권한 등을 둘러싸고 기관 간 힘겨루기 및 이견 등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예나 지금이나 부처 간, 중앙과 지방정부 사이의 권한 충돌이나 책임 회피는 고질병이었다.
이때 해결사 역할을 하던 곳이 국가정보원(구 안기부)의 '조정기능(coordination mechanism)'이었다. 삐걱거리는 연결 부위에 윤활유를 부어 작동을 원활하게 하는 백업 기관이 안기부 조정관(IO)들이었다. 특정 기관이나 부처 이기주의 입장에서 벗어나 성공적 행사 개최라는 대의명분에 몰두하였다. 일부 월권 논란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조정으로 인한 국가이익이 훨씬 컸기 때문에 작동되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피하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던 무대를 제3의 기관에서 마련하는 것은 분명 생산적이었다.
국민소득 3만5,000달러의 선진국가를 지향하지만 지방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는 정책 추진체계의 혼선으로 여전히 미완성이다. 국제행사를 둘러싼 지방행정 추진체계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로 혼선이 비일비재하다. 기초·광역 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에 이르기까지 지방행정 주체들의 행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준비단계부터 우왕좌왕이다. 지연과 학연 등으로 얽힌 지역사회에서 중뿔나게 혼자만 문제점을 제기하다가는 오히려 왕따 신세가 될 뿐이다. 지역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 컨트롤타워가 지방에서는 힘을 못 쓰는 이유다.
세종시 중앙부처는 큰 모자를 쓰고 탁상행정을 수립하고 지시한다. 지자체들은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차제에 국제행사를 빌미로 지역 민원을 해결하는 데 올인한다. 공무원들은 현장을 챙기기보다는 폼 나는 해외 출장에 여념이 없다. 배가 산으로 가기는커녕 망망대해에서 멈춰 서고 잔칫날이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4만여 명의 외국인이 참석하는 펄 밭 캠핑 행사를 꼼꼼히 챙기는 기관은 없었다.
향후 수많은 국제행사를 개최해야 하는 당국 입장에서 각 단위별 컨트롤타워 조정기능을 어떻게 작동시킬지 고심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국제 행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발경제시대 국정원의 조정기능은 ‘국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관점에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정치개입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국정원을 감히 끄집어내는 이유는 ‘국가 이미지’라는 국익 수호 때문이다. 방첩 기능도 중요하지만 국가 이미지 관리도 국내외 종합정보기관의 필수 업무다. 지역 방첩과 안보를 위해 전국 국정원 지부는 지방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사자성어는 기업인들에게는 ‘우리의 문제 현장에 답이 있다’는 명제로 바뀐 지 오래다.
서해안 바닷가 매립지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는 현장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8월 폭염은 예상 가능한 변수로서 샤워실, 화장실 등 부대시설은 얼마든지 현장대처가 가능한 사안이다. 국제행사를 계기로 지역 SOC 민원을 해결하려는 염불보다 잿밥의 구태도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원이 아니어도 좋지만, 제3의 정책 조정 기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잼버리 징비록(懲毖錄)의 작성은 불가피하다. 난장판이 재연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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