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1> 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오버투어리즘 덮친 관광지 11곳 분석
관광지로 떠오른 마을, 임대료 상승
등떠밀린 세입자 등 이주로 공동화
슈퍼 등 필수시설 없어져 이탈 가속
약국 77% 문닫고 병원 25% 줄어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이웃? 거의 다 떠났지. 10년 전에 벽화 그린 뒤로 더 나갔어. 동네가 낡아서 불편했는데 관광객까지 밀려드니…”
뙤약볕이 뜨거웠던 8월 14일, 김안순(78) 할머니가 대문 앞 그늘에 쪼그려 있었다. ‘이웃은 다들 어디 계시냐’고 묻자, 노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사람들이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옆집 담벼락에는 사과를 든 백설공주가 그려져 있었다. 인천시 중구 개항동(옛 송월동) 동화마을. ‘차이나타운 옆 동네’로 불렸던 이곳은 2013년쯤 새 이름을 얻었다. 당시 구청장은 노인들과 낡은 건물만 남았던 구도심 마을에 동화 벽화를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분위기가 밝아져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오즈의 마법사, 흥부와 놀부, 잭과 콩나무… 무채색 벽면에 동화 주인공을 하나씩 그려 넣자 진짜로 관광객이 오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7만 명 가까운 이들이 방문했다. 이정선(73) 동화마을 통장은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가 인천국제공항에 내리면 동화마을부터 들렀다”고 전했다. 적막했던 마을에 사람 소리가 들리자 주민들도 반겼다.
반가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관광객들은 쓰레기를 문 위에 쌓아두거나 반려견 똥을 치우지 않고 사라졌다. 방문자가 늘었지만 금전적으로 득 될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싸구려 기념품이나 음료 한잔 사는 게 전부였는데, 이 돈도 외지인 점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노환으로 세상을 등지거나 이사 가는 이들만 늘었을 뿐 전입 오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인구는 10년 새 3분의 1 이상(983명→627명) 줄었다.
동화마을 주민들이 겪은 10년은 특별하지 않다. 도시재생사업이나 예술가 유입 효과 덕에 마을이 뜨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밀려와 지역 내 역학 관계가 바뀌고, 주민들이 내몰리는 역설. 한국일보가 국내 대표 마을형 관광지들을 심층 분석해 확인한 패턴이다.
본보 기자들은 휴가철이던 7월과 8월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 주민과 소상공인, 공무원, 관광 전문가 등 121명을 현장에서 만났다. 이들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이 어떤 과정을 통해 원주민을 마을 밖으로 밀어내고 지역 정체성을 망가뜨리는지 털어놨다.
땅값·임대료 상승→"돈 안 되는 세입자부터 마을 밖으로"
동네가 관광지로 뜰 기미를 보이면 땅값이 가장 먼저 움직인다. 한국일보가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 '밸류맵'에 의뢰해 분석해보니, 주요 마을형 관광지의 지가(실거래가) 상승률은 주변지역을 압도했다. 10년 새 땅값이 5배(㎡당 16만 원→80만 원) 오른 강원도 양양군 '양리단길' 인근(현남면)이 대표적이다. 양양군 전체 지가 상승률(3.3배)보다 가파르다. 이곳은 2010년대 초부터 서핑과 클럽 문화로 유명해졌다. 서울에선 종로구 익선동 한옥거리가 3.7배(1,827만 원→6,854만 원) 뛰었다. 같은 기간 종로구 전체는 1.2배 오르는 데 그쳤다.
땅값이 오르는 건 마을에 마냥 호재일까. 길게 보면 아니다. 주민 이탈의 첫 번째 징후인 까닭이다. 원주민들은 ①임대료 상승 또는 주택의 상업시설 전환 탓에 비자발적으로 이주하거나 ②집값이 오를 때 팔고 나가려는 자발적 이주 행렬에 올라탄다. 그렇게 마을은 텅 비어 간다.
문제는 예술가 등 마을 경쟁력을 키워온 핵심 집단이 쫓겨나듯 떠난다는 점이다. 이들은 건물주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는 세입자다.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에서 4년째 공방을 해온 캘리그래피 작가 차우석(65)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집주인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내년 4월이면 짐을 싸야 한다. ‘건물을 지저분하게 썼다’는 이유를 댔지만, 차씨 생각은 다르다. “공방 대신 카페가 들어서면 월세 받기는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흰여울마을은 해안 절벽 위 낡은 가옥에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며 재탄생했다. 예술이 곧 마을 정체성인 셈이다. 차씨의 가게는 이곳에 남은 마지막 공방이다.
서울 한복판에 슈퍼 없어 채소 트럭…10년간 마을 편의시설 42%감소
도심 한복판인데 시장도, 약국도, 병원도 없어요. 채소 트럭이 오는데 너무 비싸 지하철 타고 장을 보죠.
서울 북촌한옥마을 주민 이종선(76)씨
원주민이 한 번 떠나기 시작하면 마을 공동화는 급격히 속도를 붙인다. 골목 상권에서도 수요공급원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손님(정주 인구)이 줄면 병원과 약국, 슈퍼마켓 등 주민 생활에 꼭 필요한 가게들이 문 닫는다. 마을형 관광지는 보통 구도심에 많은데, 가뜩이나 열악한 주거 환경이 더 나빠지니 주민들도 버티기 어렵다.
마을이 관광지가 되면 주민편의시설은 얼마나 줄어들까. 최근 10년치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해봤다. 대상은 △병·의원 △약국 △미용업 △이용업 △세탁업 등 5개 업종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10년간 11개 마을의 주민편의시설은 41.4% 줄었다.
주민이 줄면 동네 보건의료 시스템부터 무너진다. 마을형 관광지 내 약국은 10곳 중 7곳꼴(76.5%)로 문을 닫았고 병·의원도 24.9% 줄었다. 예컨대 주민 3,000명이 사는 현남면에는 약국이 하나도 없다. 면 전체에 의원은 2개 있지만, 양리단길이 있는 인구1리에는 전무하다. 이 마을에는 한 해 11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현남 보건분소 관계자는 “병원에 가려면 강릉시 주문진읍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해변에서 주문진 읍내 정형외과까지 직선거리는 약 10㎞. 택시로 21분을 달려야 한다. 마을 주민 중 거의 절반(44.3%)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건강 고위험군이 많은 동네인데, 의료 인프라는 취약하다는 얘기다. 동화마을의 고령 주민들이 자주 찾던 노인성 질환 전문병원도 2015년 장난감 등을 파는 잡화점으로 바뀌었다. 중국 관광객이 몰려든 직후다.
'서핑 성지' 양리단길 건물주 45% 외지인
"관광지가 되면 사는 사람은 줄어도 지역 경제에는 도움이 되니 좋은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이를 검증하려면 관광객 지갑에서 나온 돈이 누구에게 가는지 따져봐야 한다. 현남면에서 39년간 장사해온 전모(70)씨는 "손님이 몰리는 해변 앞 술집과 음식점,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나 건물주는 대부분 서울 등 외지 사람"이라고 했다. 양리단길 상권이 뜨거워보이지만 결국 돈은 서울로 간다는 것이다.
전씨 주장은 사실에 가까웠다. 양리단길과 맞닿은 해변가 핵심 상권 51개 건물주의 거주지를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45.1%가 서울 등에 사는 외지인(강원도 비거주자·법인소유 2개 포함)이었다. 외지인의 70%는 현남리가 '서핑 성지'로 주목받은 2013년 이후 건물을 사들였다.
결국 건물주가 양양에서 벌어들인 돈은 강원도 밖에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생활권이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공정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공감만세의 고두환 대표는 "여행객이 내는 세금 중 핵심인 부가가치세는 중앙정부가 가져간다"면서 "지자체는 일부를 교부받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통유리 카페와 회오리 감자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원주민이 떠나면 마을은 정체성을 잃는다. 닮은 외형의 카페와 주점, 회오리 감자류 같은 엇비슷한 간식 가게만 늘어난다. 관광지로서의 경쟁력도 자연스레 꺾인다. 실제 11개 마을형 관광지에선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 한옥체험업 등 15개 관광·상업시설이 10년 새 83.2% 증가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카페 등 휴게음식점도 갑절로 늘었다. 사람 사는 마을로서 기능은 사라지고 상업시설만 즐비한 곳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흰여울마을에 남은 주민들도 우울한 미래를 걱정한다. 골목마다 배었던 사람 냄새는 이미 많이 빠졌다. 대신 서울에서도 볼 법한 비슷비슷한 카페가 마을을 채웠다. 주민 사이에선 "치킨집과 편의점을 합친 것보다 커피숍이 더 많다"는 탄식이 나온다. 건축물대장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이 마을의 비(非)주거용 건물 69개 중 37개(53.6%)가 카페였다. 이 가운데 25개는 영업허가조차 받지 않았다. 마을에 50년째 살고 있는 김갑순(62)씨는 "카페 대부분이 바다 쪽으로 트인 통유리창을 냈는데 개성이 전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대로 가면 예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주민과 상인, 지자체 모두 알고 있다. 흔하디 흔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양양에서 만난 이승범 인구해변 운영팀장은 고층 상업시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높은 건물은 서울에도 많잖아요. 여기 오는 관광객들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양양만의 느낌을 즐기고 싶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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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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