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 후보자는 두 차례 법원장을 지내고 대법관 후보에도 오르는 등 32년간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온 ‘보수 정통’ 법관이다. 재판 실력과 사법행정 능력에서 대법원장을 맡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목하는 건 그가 양승태-김명수 대법원 12년 동안 한없이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와 독립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적임자냐는 점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판사를 통제하고 재판 거래로 사법농단을 주도한 혐의로 2019년 1월 구속돼 사법부 역사에 씻기 힘든 치욕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가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파격 임명한 김명수 현 대법원장 또한 그의 정치 성향이 판결 편향과 선택적 재판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사법부를 이끄는 대법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13명의 대법관 임명 제청은 물론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 권한을 갖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도 이끈다. 마음먹기에 따라 3,000여 명 전국 판사 인사를 통해 사법부 판결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대법원장이 정권 코드에 맞춰 인사권을 행사하고 정치적 재판을 하는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국민들은 지난 12년 동안 똑똑히 목도했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이 후보자가 윤 대통령 대학 1년 후배로 친분이 있는 데다 보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왔다는 점에서 또 다른 편향을 걱정한다. 그가 임명되면 대법원 13인 전원합의체가 보수 우위 구도(8명)로 본격 재편되기 시작하는 것 또한 우려를 키운다.
이 후보자 스스로 사법의 정치화를 끊어낼 적임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청문회에서 사법권 독립과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길 기대한다. 당장 6명 대법관 임기가 무더기로 만료되는 내년에 제청권을 어떻게 행사할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해 대법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는 초유의 사태는 없길 바란다. 이젠 사법부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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