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1> 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주민 떠나 '빈집' 느는 한옥마을 북촌
관광객들 마당까지 '불쑥' 들어오기도
10년 새 북촌 주거시설은 29%P 줄고
상업시설 25%P 늘어나 정체성 '흔들'
정주 한옥촌이냐 민속촌이냐 '갈림길'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이 골목은 늘 이래요. 무섭고 스산해 통화 버튼 누르고 귀에 대고 가곤 해요.
7월 21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11길에서 만난 여고생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북촌 한옥마을의 중심 골목인 11길 주변에는 모두 16채의 한옥이 있다. 이 중 창가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은 5채뿐이다. 나머지 11채는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살지 않는 빈집이다.
언덕 위 보안등 2대가 빛을 뿜어내보지만 어둑함을 밀어내진 못했다. 일몰 후 황혼조차 사라진 오후 8시 30분이 지나면 인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광객이 몰렸던 낮 시간대와는 정반대다. 토박이 주민은 “고스트 타운(유령 마을)이 돼버렸다”고 했다. 조선 시대부터 사람이 정주해온 서울의 마지막 한옥마을. 지난 10여 년간 북촌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일보는 7월 11일부터 8월 25일까지 주민과 공무원, 학자 등 21명을 인터뷰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인 북촌의 과거와 미래를 들어봤다.
TV 예능 소개된 뒤 관광 코스화
'1박 2일 사태'가 마을로서 기능을 잃은 시작점이었어요.
북촌에서 20년간 실거주한 김은주(51·가명)씨. 그는 2010년 9월 유명 예능 프로그램인 KBS '1박 2일'에 마을이 소개된 일을 '사태'라고 표현했다. 마을 정체성을 단박에 뒤흔든 사건이 그렇게 벼락같이 찾아왔다. 출연자들은 '북촌8경'에서 사진 찍기 미션을 수행했는데 대부분 고즈넉한 골목들이었다.
조용하고 평범했던 마을에는 이후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광고·드라마 촬영 인력이 주로 오더니 국내 관광객에게도 입소문이 났다. 2013~2014년부터는 마을 입구 격인 돈미약국 건너편에 관광버스가 나타났다. 외국인들은 사진기를 목에 건 채 골목을 점령했다.
2017년이 정점이었다. 주민 7,500명이 사는 마을(가회동·삼청동 인구 기준)에 외국인 관광객만 280만 명이 찾아왔다. 김씨는 "관광객이 많을 땐 골목을 가득 채운 인파를 헤집고 출근해야 할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감당할 수 없는 인파가 밀려드니 탈이 났다. 관광객들은 한옥 대문을 열고 들어와 소변을 보거나 쓰레기를 길바닥에 던졌다.
주민들도 참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씨는 "문제를 풀어보려고 안 해본 게 없다"고 했다. 2016년에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서울시에 "쓰레기통과 공중화장실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2018년 6월 주민 30여 명은 마을 입구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집회까지 열었다. 60년 토박이 이종선(76)씨는 관광객을 위해 집 화장실을 무료 개방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불편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성난 민심에 놀라 '관광허용시간제(오전 10시~오후 5시ㆍ일요일은 금지)’를 도입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효과가 떨어졌다.
부유층이 산 한옥, 별장으로 써 주중엔 빈집
뾰족한 방법이 없자 북촌 주민들은 '탈출'을 택했다. 집을 팔거나 빈집으로 남겨둔 채 거주지를 옮긴 것이다. 북촌이 걸쳐 있는 가회동·삼청동의 정주 인구는 2013년 이후 10년간 27.8%(2422명) 줄었다. 이강배 전 가회동 주민자치위원은 "관광객이 몰리는 한옥마을만 한정하면 2016년에도 100채 중 40채가 비어 있었다"며 "지금은 빈집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주민 김인혜(62·가명)씨는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이 있거나 고령이라 이사하기 힘든 이들을 빼고는 거의 다 북촌을 빠져나갔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사람이 살던 집들은 속속 상업시설로 바뀌었다. 한국일보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가회동 5통 일대 한옥 84채의 건축물대장을 분석해보니 주거용은 52채(61.9%), 상업용은 32채(38.1%)로 집계됐다. 2010년에는 주거용이 73채(86.9%)로 대부분이었고, 상업용은 11채(13.1%)에 불과했다. 가회동 5통장 이기배(75)씨는 "주거용 한옥을 사들여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거나 돌잔치 스튜디오 등 상업시설에 임대를 주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행정 문서에는 주택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상 빈집이거나 상업시설로 리모델링 공사 중인 한옥도 최소 7채에 달한다. 이를 감안하면 정주 한옥 비중은 50%대 초반까지 떨어진다.
최근엔 외국인의 ‘한옥 스테이’ 수요를 겨냥한 외부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최근 3년간 북촌로 11길 일대에서 한옥체험업 허가를 받은 한옥만 16채. 이중 9채(56.3%)는 외지인 소유다. 특히 기업형 숙박업체들이 한옥 확보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한옥을 대거 매입ㆍ임대한 후 한옥 호텔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가격은 5성급 호텔에 버금간다. 마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김광수(67)씨는 “최근 업체가 찾아와 ‘운영권을 넘겨달라’고 제안했지만, 집주인이 살면서 남는 방을 외국인에게 내주는 한옥 스테이 취지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북촌 한옥 중 상당수가 대기업 오너 일가 등 부유층의 별장처럼 쓰이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집들은 주중에는 활용도가 떨어져 빈집이나 다름없다. 김영종 전 종로구청장은 이에 대해 "사람이 정주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이런 집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게 한옥 보존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서울시 "10년간 한옥마을 10곳 더"
북촌로 11길에 사람 사는 한옥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50년간 살았던 한 주민은 최근 관광객에게 시달리다 집을 내놓았다. 한옥숙박업체에 운영권을 넘긴 주민도 있고, 향후 숙박업소를 운영하기 위해 한옥체험업으로 용도변경을 마친 집도 있다. 이렇게 되면 16채 중 정주 한옥은 2채만 남게 된다. 서울시는 북촌 한옥마을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향후 10년간 새 한옥마을을 10곳 더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주민이 사는 정주 한옥촌이냐, 전통적 외피만 남은 민속촌이냐. 북촌은 갈림길에 서 있다. 북촌 사람들은 문화 정체성을 잃으면 관광지로서 매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강배 전 위원장도 말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한옥은 망가질 수밖에 없어요. 가꾸는 사람이 있어야 볼거리가 생기죠. 주민 없는 관광지는 결국 낙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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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2517140000790
<글 싣는 순서>
①마을형 관광지의 흥망사
②비극은 캐리어 소리부터
③저가 관광과 손잡은 시장님
④다가오는 관광의 종말
⑤숫자보다 중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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