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 이어 주식시장 달군 맥신
대량생산 아직인데… 연구진은 당혹
신소재 기대 클수록 차분한 평가를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긴급 속보, 맥신 대량생산 확정’, ‘맥신 시장 규모 어마어마’, ‘맥신이 초전도체 박살냈다’….
맥신 열풍이 주식시장을 달궜다. 2차전지에 이어 상온 초전도체에 쏠렸던 투심은 ‘포모(FOMO·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증후군’에 휩싸인 듯 새로운 타깃 ‘맥신’으로 내달렸다. 이 급작스러운 흐름에 물꼬를 터준 셈이 된 논문을 발표한 연구진은 정작 영문을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했다. 해당 논문으로 당장 맥신을 대량생산할 수 있지도 않고 상용화 시기는 여전히 짐작하기 어려울뿐더러 초전도체나 주식시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다.
정확히 말해 연구진은 맥신 대량생산을 성공시킨 게 아니라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맥신의 원래 모습은 ‘맥스(MAX)’라고 불리는, 금속과 탄소가 섞여 있는 덩어리다. 이를 강한 산성 수용액에 담가 녹이면 두께가 1나노미터(10억분의 1m) 정도로 얇은 2차원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이게 맥신(MXene)이다. 전기가 잘 흐르고 여러 금속화합물과 조합할 수 있어 2011년 등장 이후 반도체와 전자기기 산업의 미래 소재로 주목받아왔다.
맥신은 제조되는 동안 용액 속에 들어 있던 화학물질 중 어떤 게 얼마나 달라붙었느냐에 따라 구조와 특성이 달라진다. 거꾸로 생각하면 용액의 온도, 산 농도(pH) 등을 조절해 특정 화학물질을 골라 붙인다면 원하는 물성을 갖춘 맥신을 다량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연구진은 이에 착안해 맥신에 붙은 화학물질 종류를 간단한 수치로 분석하고 맥신의 물성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해당 수치가 1보다 낮으면 고성능 트랜지스터나 광검출기에, 1보다 높으면 열전소재나 자기센서에 응용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이 기술이 정말 맥신 대량생산에 도움이 될지, 다양한 맥신을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을지 등을 확인해볼 생각으로 연구진은 함께 일할 기업을 물색하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 발표 직후부터 몰아친 주식시장의 광풍 탓에 협업 시도조차 조심스러워졌다고 연구진은 귀띔했다. 기술에 진심인 기업인지, 주가 띄우려고 손 내미는 기업인지 구분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되레 기술 상용화가 늦어지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해하고 있다.
연구진은 17일 이번 성과를 공개하면서 “맥신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다”고 소개했다. 대량생산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지만, 주식시장에선 바로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이제 막 길을 닦고 있는데 고속도로가 열렸다고 생각한 셈이다.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여전히 멀다.
맥신보다 먼저 등장한 그래핀도 ‘꿈의 신소재’로 불렸다. 전기가 잘 통하면서도 쉽게 늘어나거나 구부러지고, 가벼우면서 내구성까지 강하다. 그래핀을 발견한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고 수많은 연구실에서 대량생산과 상용화를 시도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껏 그래핀은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신소재가 뜨고 져왔지만, 상온 초전도체와 맥신처럼 폭발적인 관심을 끈 건 이례적이다. 한 과학자는 그 이유가, 많은 산업 공정이나 기술이 기존 소재를 활용하는 데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처럼 말이다. 참신한 신소재에 대한 갈망이 초전도체, 맥신 연구에 객관적 사실을 뛰어넘는 의미를 부여했을 거란 추측이다. 신소재가 산업 현장에 자리 잡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기초연구 예산 삭감이 그 시간을 더 늘리진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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