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 원심 30억 원보다 줄여 판결
노동계 "개인에게도 배상 책임 물려" 반발
경찰이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과정에서 파손된 헬기 등을 배상하라며 노동조합에 제기한 거액의 피해보상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2억8,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당초 배상액 30억 원에서 대폭 줄었지만, 법원은 노조뿐 아니라 노조원에게도 배상 책임을 지웠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자 개인에게 파업 책임을 묻는 가혹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38-2부(재판장 박순영)는 25일 국가(경찰)가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파업 참가 노동자 36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피고는 공동으로 원고에 1억6,688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공동'은 노조원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사건 당일부터 발생한 이자를 포함하면 배상금은 2억8,000여만 원에 달한다. 소송 총비용 중 90%는 국가(경찰)가, 나머지 10%는 노조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
노조는 노동자에게도 배상 책임을 물린 데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 재판부는 노조에만 손해배상금 3억 원을 물리는 내용으로 조정을 시도했지만, 정부가 조정을 거부하며 이날 판결이 선고됐다. 장석우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국가가 재판부의 조정을 거부하고 소송을 유지한 것은 손해배상 비용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조원 개인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라며 "법원도 이에 일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법률원 소속 서범진 변호사도 “조합원 개인에게 배상 책임을 지운 것은 노동자에게 가혹한 판결"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2009년 발생한 파업을 두고 14년간 법적 다툼이 이어지는 상황에 부담감도 호소했다. 파업에 참여했던 채희국씨는 “한 계절만 더워도 이렇게 숨이 막히고 힘이 드는데 우리 손해배상 대상자들은 지금까지 가슴이 막힌 상태로 살고 있다”며 “14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투명한 철창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은 “자본도 아닌 국가가,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끝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작태에 분노한다”고 했다.
쌍용차 노조는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해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농성 진압 과정에서 헬기와 기중기 등이 훼손됐다며 14억5,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 2심에서는 노조가 11억6,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는데, 지연 이자까지 합하면 배상액은 3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파업 중 경찰 장비가 훼손됐더라도 과잉 진압을 했다면 노동자에게 손해를 과도하게 물려서는 안 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경찰이 이번 판결에 불복하면 대법원 판단을 또 받을 수 있다. 노조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해서 다시 판단을 받은 사건이 대법원에서 또 뒤집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경찰이 불복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