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3> 저가 관광과 손잡은 시장님
본지, 17개 광역단체 관광정책 성과지표 분석
주민 삶의 질을 지표 삼는 지자체 한 곳도 없어
관광객·SNS 팔로어 늘리기 등 수치 위주 채점
14개 지자체, '1명당 1만~3만원' 여행사 지원
소음·주차난 등 관광 공해 피해는 주민들 몫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관광객이 아무리 많이 오면 뭐해요. 마을은 화려해졌지만 주민 삶은 어두워졌어요."
이정선(73) 인천 동화마을 통장은 지난 10년을 씁쓸하게 돌아봤다. 이 마을은 2013년 구청의 도심재생사업을 통해 담벼락에 동화 벽화를 그리며 주목받았고, 한때 7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았다. 하지만 소음과 주차난 등 관광 공해는 온전히 주민들이 뒤집어썼다. 동화마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의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은 "지자체는 우리 삶의 질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왜 그럴까. 원인은 관광 정책을 평가하는 채점 기준에 있었다.
한국일보가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17개 광역자치단체의 관광 정책 핵심성과지표를 분석한 결과, 지역민의 삶의 질을 지표로 삼는 광역단체는 한 곳도 없었다. 몰려든 관광객 탓에 지역 주민의 생활 여건이 악화해도 관광 담당 부서 직원들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1, 2년마다 인사 발령… 질적 성과 내기 어려워"
지자체들은 손쉽게 관리·측정할 수 있는 수치 중심으로 관광 정책을 평가했다. 예컨대 전체 관광객이나 지역 축제 방문객이 전년보다 얼마나 늘었는지 따져보는 식이다. 전남도 관광과는 올해 주요 성과 지표로 △관광객 증가 △관광지 순환버스 탑승률 △지역 축제 방문객 수 등을 채택했다. 세종시 관광 담당 부서는 지도와 책자 등 관광 홍보물 4종만 만들면 100점 만점에 30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수를 1년 새 얼마나 늘렸는지가 주요 평가 지표인 곳도 여럿 있었다.
수치 위주로 평가지표를 짠 지자체는 보통 넉넉히 목표를 달성한다. 대구시는 최근 5년간 △해외 관광객 유치 실적 △문화관광해설사 해설 및 안내실적 △시티투어 참가 인원수 등을 평가지표로 삼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2020년을 제외하고는 매해 목표치를 쉽게 넘어섰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왜 숫자에 매몰될까. 경기도의 한 공무원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산출(결과) 또한 명확해야 뒤탈이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관광 정책 탓에 주민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등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은 1, 2년마다 인사발령이 나는데 질적 지표로 평가하면 짧은 기간 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질을 따지는 정성적 요소 없이 정량 목표만으로 관광 정책을 평가하는 광역 지자체는 인천과 대구 등 5곳이나 된다.
수치 중심의 목표 달성에 집착하다 보면 '돈으로 관광객을 사온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광역단체의 관광 인센티브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17개 지자체 중 14곳(82.4%)이 관광객을 모아 오는 여행사 등에 현금을 지원해 줬다. 지자체들은 관광객 1명당 1만~3만 원을 지급했다. 지자체들은 "인센티브로 나간 액수보다 이렇게 모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쓰고 가는 돈이 더 많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개별 관광객 비중이 80%까지 늘었기에 단체 관광객에게 돈 쓰는 정책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지역 축제 때 방문객을 데려온 여행사에는 돈을 더 얹혀 주는 곳도 있다. 경남도는 9월 15일부터 열리는 산청 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 기간 중 행사장을 방문하면 숙박비 1만 원과 차량 임차비 10만 원을 추가 지원한다. '지역 축제의 성패가 지자체장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웃돈을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주거환경 만족도·젠트리피케이션 여부 등 평가에 반영해야
지자체는 좋은 성적표를 보며 웃을지 몰라도 이는 '속 빈 강정'인 경우가 많다. 지자체의 모든 정책은 결국 지역민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이 돌아갔는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하는데, 수치 중심 지표로는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3년 전 한국관광공사는 김석호 교수팀과 함께 '지역관광 상생지표'를 만들어, 관광역량 평가에 '주민 행복' 지표를 넣었다. 지역민 입장에서 주거환경에 만족하고 자긍심과 행복감을 느끼는지 측정한다. 젠트리피케이션(상업화에 따라 임대료가 올라 세입자 등 원주민이 터전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 여부 등 사회적 책무성도 평가한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통신·신용카드 데이터를 결합해 활용하면 익명의 특정 관광객이 지역에서 얼마나 돈을 쓰고 갔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서 "관광객 숫자보다는 지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효과와 만족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헌 민주당 의원은 "정부나 지자체의 관광 정책은 지역 고유성을 살리는 쪽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마을형 관광지는 주민들이 겪는 불편이 없는지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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