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2.8% 늘어난 657조 원 규모로 확정했다. 올해 증가율 5.1%나 지난 정부 연평균 8.7%와 비교하면, 나라살림 허리띠를 바짝 조인 것이다. 이는 19년 만에 가장 작은 증가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예상 비율은 3.9%로,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재정 준칙 기준인 ‘재정적자 GDP의 3% 이내’를 훌쩍 넘어선다.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했다고 보기엔 아직 어색한 것인데 경제여건이 순조롭지 않은 탓이 크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건전재정 기조와 현재 재정에 대한 수요, 국민의 기대 등을 종합하여 고민 끝에 나온 답이 2.8% 증가”라고 밝혔다. 재정적자를 3% 이내로 묶으려면 내년 예산을 10% 이상 삭감해야 하지만, 어려운 경제전망과 필수 민생 예산 확보를 위해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는 것이다.
총선이 있는 해임에도 눈앞의 의석보다 ‘재정 만능주의’ 타성을 차단하기 위해 예산 증가를 최소화했다는 충정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재정 확대와 긴축은 당시 경제 흐름을 고려해 선택해야 경제성장과 정부 재정건전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인다면, 경기침체 탈출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올해 2분기 정부가 지출을 줄인 게 성장률을 끌어내려(0.5%포인트) 0.6% 성장에 그쳤다는 추산도 있다. 이는 세수 감소로 이어져 올해 상반기 재정적자는 83조 원으로 올 한 해 예상 적자 58조 원을 훌쩍 넘었다. 정부 재정 긴축이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뿐 아니라 재정건전성마저도 악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필요한 지출 분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런 우려를 지우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대로 ‘경제회복’과 ‘재정건전성’이란 두 토끼를 잡아, 민생을 살리고 미래 세대의 짐도 덜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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