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물질+정보 통찰을 기반으로 생명의 근원 찾는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 신간 '기계 속의 악마'
"생명이란 무엇인가?" 1943년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던진 이 질문이 80년이 지난 2023년 다시 탐구의 주제로 떠올랐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를 통해서다. 그 탐구의 시작은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을 가르는 것은 정보다"라는 명제다.
폴 데이비스의 신간 '기계 속의 악마'는 '생명=물질+정보'라는 통찰을 기반으로 생명의 근원을 찾아간다. 시작은 이 주장의 난점을 푸는 것부터다. 정보는 추상적 개념이고, 분자는 물리적 구조인데 이 둘은 어떻게 이어질까. 저자는 150여 년 전 사고실험인 '맥스웰의 악마'를 떠올린다. 물리학자 맥스웰은 열역학 제2법칙(고립계에서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변한다는 것)을 거스르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상자 속 덧문을 조절해 차가운 분자와 뜨거운 분자를 분류하는 악마를 통해서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맥스웰의 악마'는 타당하지만 구현하기 불가능한, 역설로 여겨졌다. 이 악마의 핵심에 '정보'가 있음을 알아챈 건 핵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였다. 실라르드는 악마의 장난으로 얻는 이득이 분자를 지각할 때 치르는 엔트로피 비용으로 상쇄되므로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컴퓨터 과학에서도 돌파구가 나온다. IBM의 물리학자 롤프 란다우어는 컴퓨터가 계산과정에서 쌓인 정보들을 지울 때, 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니 정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 대상과 결부된 셈이다.
저자는 정보가 가지는 힘을 바탕으로 기존의 진화론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다윈주의 2.0이다. 생명이 몇 가지 양자 효과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도 제시한다. 이를테면, 극제비갈매기는 매년 8만 km 이상을 날아 정확히 길을 찾아 극과 극을 여행한다. 이게 가능한 건 새의 뇌 속에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나침반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생물학적 정보 처리과정이 양자역학에 어떻게 의존하는지 연구하는 양자생물학이 생명의 비밀을 밝힐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비욘드 연구소 소장. 관심을 생명의 기원, 우주생물학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생물학과 물리학은 물론, 컴퓨터과학과 진화론, 후성유전학과 신경과학, 양자물리학과 나노공학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책의 진입장벽은 높지만 생명에 대한 이해가 변하고 있는 과학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저자가 역설하는 건 새로운 물리학의 필요성이다. "생명 물질을 물리학에 합치려면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하다. 즉, 물리법칙 자체의 본성을 새로 고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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